by정태선 기자
2014.11.27 17:33:27
[이데일리 정태선 기자] 국내에서 보기 드문 파격적인 인수·합병(M&A) 사례가 나왔다. 삼성그룹이 화학과 방산부분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2조원대에 매각했다. 자발적으로 이뤄진 M&A인데다 쌍방이 ‘윈윈(win-win)’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980년대 중화학부문 구조조정, 1997년 반도체 빅딜 같은 정부 주도의 구조개혁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환위기 이후 이뤄진 최대규모 인수합병(M&A)인 동시에 민간 자율로 추진됐다는 점에서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삼성그룹은 비주력사업인 화학과 방위산업을 털어내고 가벼운 몸집으로 전자, 금융, 건설 분야의 삼각편대를 구성할 수 있게 됐다. 한화그룹은 주력으로 육성하는 석유화학과 방산분야의 국내 선두로 올라서게 됐고, 장부가액보다도 싸게 할부형태로 사들였으니 만족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 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전격적으로 이번 일을 추진한 오너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덤까지 챙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그룹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법정 공방 이후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고 공식적으로 경영에 복귀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을 조성했다.
서로 잇속이 맞아떨어진 결과이기도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더 큰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이번 딜은 성장한계에 봉착한 국내 기업들의 깊은 고민을 엿볼 수 있다. 더 고통스러운 경제위기가 올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기업 구조조정설이 나도는 가운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모두 돌파구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손쉽게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불황은 견디고 호황을 기다리는 식’의 대응으로는 이제 국내 산업이 생존할 수 없게 됐다. 밑 빠진 독은 과감히 버리고 잘하는 일을 더 잘해야만 하는,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인 셈이다. 이번 딜은 그나마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이지만 한 차원 다른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굴뚝산업(제조업)에 또 다른 ‘빅딜’을 자극하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