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매표기회로 변질된 재건축 부재자 투표… 한신4지구는 다를까

by김기덕 기자
2017.10.13 15:37:51

투표율 80% 넘지만..금융·향흥 제공 등 비리 온상
"시공사 선정 무효로 시장 질서 회복 급선무"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있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한신4지구(통합 재건축 단지) 내 신반포8차 아파트 단지 전경. [한신4지구 재건축 조합 제공]


[이데일리 김기덕 기자]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교통회관에서 열린 잠실 미성·크로바아파트 재건축 조합 시공사 총회 현장. 설명회 후 실시된 현장 투표 결과는 202표 대 108표로 GS건설이 경쟁사인 롯데건설보다 두배 가까이 많은 표를 받았다. 하지만 부재자 투표 개표 이후 결과는 완전히 뒤집혔다. 지난달 28일부터 30일까지 사전에 진행된 부재자 투표에서 롯데건설이 618대 404로 앞승을 거둔 것이다. 이미 부재자 투표율이 70%를 넘어선 상황이라 정작 시공사 선정 총회 당일 투표 결과가 무의미했던 것이다.

최근 강남 재건축 수주전이 과열되는 가운데 부재자 투표가 시공사 선정을 위한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부재자 투표 비율이 80~90%에 육박해 사실상 당락을 좌우하게 된 경우가 많아서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달 반포주공1단지 수주전에서 부재자 투표율이 82.5%, 잠실 미성·크로바도 부재자 투표율이 72%에 달했다. 같은 달 대우건설과 롯데건설이 맞붙은 신반포15차 부재자 투표율도 87.2%를 기록했다.

문제는 부재자 투표 기간에 각종 사전 매표 행위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재건축 수주전에 참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부재자 투표 시작되기 2~3일 전에 조합원들 상대로 집중적으로 현금을 제공하고, 표를 찍어주는 대가로 추가 사례금을 주는 방식이 고착화하고 있는 분위기”이라며 “일부 사례금을 제시하고 투표 이후 인증샷을 요구해 이를 확인하면 현금을 추가로 주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5일 총 공사비 1조원이 걸려 있는 서초구 잠원동 한신4지구 시공사 선정 총회가 열려 그 결과에 업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진행된 한신4지구 부재자 사전 투표는 12일까지 사흘간 전체 조합원 2292명 중 총 1384명이 사전 참여율이 47%를 기록했다. 사전 투표 마감날인 이날까지 투표가 진행돼도 부재자 투표율이 50%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수주전에 나선 한 건설사는 부재자 투표를 앞두고 금품 살포 움직임이 나타날 것을 우려해 직접 신고센터까지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금품 향응 제공으로 수주전이 혼탁 양상을 보이자 조합원들이 SNS 통해 불법 행위 차단에 동참하기를 독려하는 상황도 연출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토교통부도 강남 재건축 시장의 과열 혼탁을 막기 위해 칼을 빼들었다. 앞으로 재건축·재개발 공사 수주를 위해 조합원에게 과도한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한 건설사에 대해서는 해당 사업 입찰 또는 시공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다. 재건축 수주전을 향한 전례없는 강력한 규제이자 경고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앞서 국토부는 대림산업ㆍ대우건설ㆍ롯데건설ㆍGS건설ㆍ삼성물산ㆍ포스코건설ㆍ현대건설ㆍ현대산업개발 등 8개 건설사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어 협조를 당부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 같은 협조와 경고가 현장에서는 전혀 먹히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해외 수주 등 먹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재건축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금품을 제공하는 구시대적 영업 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행정당국이나 지자체가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금품·향응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과 함께 향후 시공사 선정 취소라는 강한 선례를 만들어야 재건축 수주 관련 비리가 근절될 것 ”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