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디지털시장법'식 규제 도입되면..韓 혁신 속도 6배 느려질 것"
by김범준 기자
2024.08.21 18:08:27
21일 인기협·美 CCIA '플랫폼 규제 동향' 세미나
ICT 수출 비중 높은 한국...유럽 따라 하면 낭패
"기술경쟁 주도권 목적도…韓 플랫폼 피해볼 것"
"네·카오, 쿠팡 죽이면 알리바바·테무 반사이익"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같은 규제가 한국에 도입될 경우, 정보통신기술(ICT)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에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에 따르면, 이러한 규제는 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서비스 출시와 접근을 지연시키고, 유럽보다 혁신 속도를 최소 6배 느리게 할 가능성이 있다.
21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FKI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온라인 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 세미나’에서는 디지털 플랫폼 규제의 역설에 대해 논의가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가 공동 주최했다
| 21일 서울 여의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FKI컨퍼런스센터에서 ‘플랫폼 규제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란 주제로 열린 ‘온라인 플랫폼 규제 동향 국제 세미나’에서 조나단 맥헤일 미국 컴퓨터통신산업협회(CCIA) 부회장이 토론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실장,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유병준 서울대 경영대 교수, 조나단 맥헤일 CCIA 부회장, 백용욱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사진=김범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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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가 올해 3월부터 시행한 DMA는 구글, 애플, 메타 등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법안이다. 이 법은 연 매출 75억 유로(약 11조 원) 이상의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하고 강력히 규제한다. 게이트 키퍼로 지정된 기업은 자사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특혜를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연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받는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EU 디지털시장법(DMA)을 둘러싼 미국, 유럽, 중국 등의 해외 사례와 그 영향을 분석하는 내용이 다뤄졌다. 특히, 국내에서 DMA와 유사한 규제 방식을 도입하면 국익에 반할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트레버 바그너 CCIA 연구센터 소장은 온라인 발표를 통해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한국의 수출 비중은 전체의 약 29%에 달하는 반면, EU는 약 5%에 불과하다”며 “한국이 EU DMA에 기반한 정책을 시행할 경우, 인공지능(AI) 서비스 출시와 접근이 지연돼 유럽보다 생산성과 혁신 속도가 최소 6배 느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니얼 소콜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2021년 중국 정부가 플랫폼 독점 금지 지침을 발표하면서 가격 차별이 생겼고, 이는 중국의 디지털 혁신에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DMA의 도입은 단기적 문제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한국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에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나단 맥헤일 CCIA 부회장은 인사말에서 EU의 디지털시장법(DMA)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EU 시장에서의 실험적인 규제로 미국과 한국의 무역 및 경제적 동반자 관계가 훼손될 수 있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도입하면 활기찬 시장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EU의 DMA가 유럽인들의 일상을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카티 수오미넨 미국 전략국제연구소(CSIS) 객원연구원은 이날 온라인으로 참여해 “디지털시장법(DMA)이 시행될 경우, EU 내 기업들은 최대 710억 유로(약 105조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할 것”이라며 “대부분의 중국 기업에는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 점을 감안할 때, 잠재적인 역효과와 ‘기울어진 운동장’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구글 지도와 지메일,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 간의 연동 서비스 금지로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에 불편이 초래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패널 토론에서는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산업 발전을 위해 정부와 기업간 협력이 절실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실장은 “(EU의 DMA에는)미국 바이든 정부의 빅테크 규제 강화 입장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며 “EU가 국제적인 논의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고 짚었다.
백용욱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 교수는 “한국은 자국 플랫폼을 기반으로 IT 인력을 자체적으로 양성해 왔다”며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네이버, 카카오, 쿠팡 등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DMA 방식의 규제가 도입될 경우, 전자상거래 업계에서 2위 사업자인 중국의 알리바바와 테무가 가장 이익을 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주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미국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중국의 반사 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이는 미·중 첨단기술 경쟁과 관련이 있다”며 “중국은 2020년 이후 현재까지 100차례 가까운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다른 나라보다 규제 강도가 매우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여러 국가들이 서로 다른 규제를 도입하면서 프래그멘테이션(분절화) 문제가 발생할 것이며, 한국의 빅테크가 직면할 중대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플랫폼 기업 간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