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보상은 커녕 임대료도 못내”…자영업자들, 헌법소원 청구

by이소현 기자
2021.01.05 14:04:57

중소상인·자영업자들, 5일 헌법재판소 헌법소원
지난 12월 매출 30분의 1 불과…강화된 영업제한 탓
"손실보장 규정 없는 감염병예방법·지자체 고시 ‘위헌’"
‘임대료 멈춤법’ 처리 등 없으면 2차 소송 모집 검토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서울 마포구에서 호프집을 운영 중인 한모씨는 오후 9시 이후 영업제한 포장·배달만 허용하고 좌석 간 거리두기 제한조치가 있었던 작년 8월부터 매출이 반토막 났다. 그는 영업제한 조치가 있었던 지난해 12월 매출은 전년 대비 30분의 1로 급감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서울 강북구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2주간 휴업과 강화된 방역조치가 시행된 작년 8월 이후 전년 대비 매출이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들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제한만 있고 보상은 없는 코로나19 영업 제한조치는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청구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영업제한 조치에 따른 피해 자영업자들이 손실보상 지원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은 공권력에 의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헌법재판소에 제소해 그 침해된 기본권의 구제를 청구하는 제도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민생경제연구소·전국가맹점주협의회·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등 단체는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지자체가 집합금지·제한 등 영업제한 조처를 했으나, 근거가 되는 감염병예방법과 지자체 고시에 손실보상에 대한 아무런 근거조항을 마련하지 않았다”면서 “중소상인·자영업자들은 재산권·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이같이 밝혔다.

헌법소원 청구 당사자로 참여한 한씨와 김씨는 “방역 당국의 코로나19 확산방지 노력을 헐뜯으려는 것이 아니다”라며 “매출 하락과 반복되는 영업제한 조치로 지난 1년간 재산권을 넘어 생존권을 크게 위협받았지만, 코로나19를 조기에 종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조치에 흔쾌히 협조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자영업자들은 벼랑끝에 섰다. 이들은 “연말연시 대목에 강화된 조치가 시행되면서 사실상 제대로 된 영업을 할 수가 없었다”며 “연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절반 또는 4분의 3 수준에 불과해 더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비롯한 코로나19 3차 확산에 대응한 맞춤형 피해지원대책’을 발표한 12월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거리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정부가 중소상인들과 영업제한 조치를 받은 자영업자들을 위해 △긴급 재난지원금 △소상공인 새희망자금 △소상공인 긴급 대출 등 대책을 발표했지만, 피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한씨는 월 700만원, 김씨는 495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어, 손실보상은 커녕 임대료를 메꾸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특히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었지만 최소한의 지원마저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불만을 터뜨렸다. 한씨는 매출이 반토막 났지만, 코로나19 발생 전인 2019년 매출이 연간 4억원을 넘는다는 이유로 새희망자금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2019년에 개업해 지원대상에는 포함됐지만, 아직도 지원금을 받지 못한 상태다.

헌법소원의 청구인 대리를 맡은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의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는 “중소상인·자영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손실보상도 규정하고 있지 않은 감염병예방법은 명백한 입법부작위”라며 “이에 기초한 각 지자체 고시는 피해 중소상인들의 재산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 위헌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이미 감염병예방법 제49조 제1항 제10호에 같은 이유로 어로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경우 손실보상 규정을 두고 있고, 감염병예방법과 법체계가 유사한 가축전염병예방법 등에도 각종 제한명령에 따른 보상규정을 마련하고 있다”며 “유독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제한 조치는 법과 고시 어느 곳에서도 손실보상 규정을 마련하지 않아 평등 원칙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연장되는 3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한 헬스장에서 관장이 휴관 공지를 입구에 붙이고 있다.(사진=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정부가 영업제한 조치의 고통을 중소상인과 상가임차인들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 “존폐의 위기에 내몰린 현장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임대인들의 자발적인 임대료 감면 노력에만 호소하고 있다”며 “국회도 ‘임대료멈춤법’ 처리와 손실보상 근거 규정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헌법소원에는 영업제한 조치를 받은 일반음식점과 PC방업 외에도 영업금지 조치를 받은 실내스포츠업 등 종사자들도 참여하려고 했으나 이미 폐업을 결심했거나 공개적으로 나서는데 어려움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팀장은 “현재 중소상인들이 엄중한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혹시라도 입을 수 있는 불이익, 임대인 등 주변의 시선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들은 최소한의 손실보상 규정도 없는 영업제한 조치에 대한 행정소송과 위헌법률심판을 2차로 진행하는 것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1차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지만 최근 학원과 헬스장을 운영하는 점주들의 항의 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와 국회가 기존의 지원대책만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공개적으로 소송 참여자를 모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