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도 없이 올리지만 말라니"…소주값 '폭탄인상' 우려 커졌다

by남궁민관 기자
2023.04.17 16:37:57

연초 공병·뚜껑값 인상에 '소주 1병 6000원 시대' 논란
당시 정부 실태조사 압박에 "당분간 동결" 공언했지만
주정 제조업체 "도저히 못터벼"…주정값 이례적 2년 연속 인상
'곡소리'나는 소주업계…손실 현실되면 대폭 인상 불가피

[이데일리 남궁민관 기자] 정부가 연초부터 소주가격 인상 억제를 위한 압박 행보를 이어가면서 관련 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소주업체들은 각종 원부자재 가격 및 제반비용 부담이 가중되는 와중에도 연초 정부 눈치를 보며 ‘당분간’ 소주 가격 동결을 선언했다.

최근 소주생산의 원료인 주정가격도 2년 연속 인상을 결정함에 따라 소주업계의 고심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업계에서는 원가 부담은 지속 가중되는데 제품가격에 이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 향후 대폭의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부담이 훨씬 커질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손님들이 소주 한잔에 식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1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10개 주정 제조회사의 주정 판매를 전담하고 있는 대한주정판매는 18일부터 주정 가격을 평균 9.8% 인상키로 결정했다. 지난 2012년 이후 10년 만인 지난해 주정 가격을 평균 7.8% 인상했던 대한주정판매는 이례적으로 2년 연속 가격을 조정하고 나선 것이다.

대한주정판매 관계자는 “2012년 이후 가격 인상을 최대한 자제해 오다가 지난해 한 차례 인상을 단행했지만 이후 가스비 등 생산 제반비용 부담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류비 증가, 각종 곡물 가격 인상에 고환율 영향까지 겹쳤다”며 “지난 2월부터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서 주정 제조사들의 ‘도저히 답이 없다’는 요청에 따라 부득이 2년 연속 인상을 결정했다”고 토로했다.

주정(精髓)은 쌀이나 보리, 타피오카, 고구마, 옥수수 등 곡물 속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만드는 소주의 주요 원료이다. 불안한 국제정세에 지난해 세계 곡물 가격이 급등한 여파가 올해 상반기 국내 주정 시장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결과다. 여기에 가스비 등 생산비용과 물류비 부담까지 커졌다는 설명이다.



소주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연초 공병·병뚜껑 값이 연이어 오르면서 소주 가격 인상요인이 발생했지만 정부의 실태조사 등 압박으로 “당분간 소주값 동결”을 공언했던 터다. 이런 가운데 예상치 못한 주정가격 인상으로 소주가격 동결계획을 이어가야 할 지 고민에 빠졌다. 소주가격 동결 계획을 이어가자니 이익률이 지속 줄어들 수밖에 없고 가격을 올리자니 정부와 소비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이번 주정값 인상 결정과 관련 일단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등 소주업체들은 “주정 가격 인상에 따른 원가 부담과 손익 악화의 우려는 경영 효율화 활동을 통해 최대한 극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가격 동결을 유지하는 ‘기한’은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소주가격 동결에 예상보다 커진 원가 부담이 겹치며 실적 악화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어서다. 이에 따라 업계 안팎에서 소주가격 인상시점은 멀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특히 가격을 올릴 경우 그간 쌓여온 부담을 상당 부분 반영해야 해 ‘폭탄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이럴 경우 식당 등에서 판매하는 소주가격은 더 올라 소비자 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소주값 동결을 압박한 명목인 국민 물가 부담 경감이 무색해질뿐더러 ‘사재기’ 등 부작용도 배제할 수 없다.

한 소주업계 관계자는 “소주 1병 출고가에서 주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10% 수준으로 이번 인상에 따라 10원 가량의 원가 부담이 늘어난다. 여기에 연초 공병·병뚜껑값 인상분까지 고려해야 한다”며 “소주 출고가에서 주세와 교육세 등 세금을 제외한 원가는 550~6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절대 부담이 적지 않은 수준”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