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해운·조선 구조조정 본격화, 차라리 잘됐다

by성문재 기자
2016.04.18 15:32:26

그동안 총선 등 이슈에 밀려 지지부진
정부가 업계 사정 진지하게 파악하는 계기될 듯
외국선주들과의 용선료 인하 협상에도 압박효과
조선업계, 자정 필요성 인정..합종연횡은 무의미

중국~한국~러시아 신규 컨테이너 노선에 투입되는 현대상선의 컨테이너선 ‘현대 유니티’호. 현대상선 제공.
[이데일리 성문재 기자] 4·13 총선이 끝나고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계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첫번째 타깃으로 꼽히는 해운과 조선업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조선 수주잔량 2위, 해운 선복량 6위 국가로 해당 업종에 큰 변화가 있을 경우 세계 시장 내 위상에도 상당한 파장을 미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특정 기업의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구조조정 방향을 결정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주말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 참석차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한 자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공급 과잉 업종과 취약 업종 구조조정을 더 미룰 수 없다. 지금 상황이 어떤지 다시 한번 잘 보겠다”며 해운과 조선, 철강업종 등에 대한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유 부총리의 구조조정 예고 발언에 대해 해운업계 일각에서는 희망적인 신호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동안 총선 등에 가려 정부의 결정이 미뤄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처한 현대상선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상선(011200)은 이미 8000억원 규모의 공모사채에 대한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조건부로 자율협약을 실시해 현대상선에 회생 기회를 줬다. 자율협약의 조건 중 하나인 용선료 협상을 이달말까지 마무리하면 법정관리를 피할 수 있다.

정기선사인 현대상선 입장에서 법정관리는 곧 청산을 의미하는 수순인 만큼 용선료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이 급선무다. 현대상선에 배를 빌려준 외국 선주들 입장에서는 한국 정부의 해운업 구조조정 본격화 움직임에 주판알을 튕기는 손놀림이 더 빨라질 수 있다. 용선료를 한푼도 못 받게 되는 상황보다는 조금 깎아주고 계속 용선료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 현대상선만한 고객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게다가 정부가 보다 종합적으로 업계 사정을 들여다보고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 나선다면 한국 해운업 대표선수인 현대상선을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해 해운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현대상선을 버린다는 것은 정부가 해운업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그전에는 해운업계가 살려달라고 호소해도 정부가 귀담아 듣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며 “이제부터는 업계 상황을 더 깊이있게 들여다보고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화물 물동량을 나타내는 벌크선 운임지수(BDI)가 최근 상승세를 나타내며 업황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긍정적이다.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시장 예상보다 높은 가격을 받고 매각에 성공한 것 역시 현대상선에 한번 더 기회를 줄 수 있는 이유다.

물론 이번 발언이 현대상선의 비극적인 운명을 예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 3년간 수조원 규모의 자구안을 이행하고 용선료 협상만을 남겨놓은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해운 못지않게 조선업종의 구조조정 여부도 이목을 끈다. 대표적인 노동집약적 산업인 조선업은 고용 측면에서 영향이 매우 크다. 유 부총리도 조선업 종사자들의 일자리 문제를 우려하며 “고민중”이라고 털어놨다.

현대중공업(009540)과 대우조선해양(042660), 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빅3는 자체적으로 군살을 빼며 구조조정을 진행중이다. 업계에서도 자정노력에 대해서는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외신에서 제기한 빅3간 합종연횡 가능성은 확률이 낮으며 설령 정부가 검토하고 있더라도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강화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선박 발주가 거의 없어 너나 할 것 없이 실적 부진에 허덕이는 상황에서 업체를 쪼개고 붙이는 식의 구조조정은 의미가 없다”며 “업체별로 자체 구조조정에 집중해 업황이 살아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바람직한 구조조정 방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