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의무 소각, 예외조항 악용 우려…‘경영상 목적’ 삭제해야”
by김경은 기자
2025.12.01 11:51:22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논평
“법안 후퇴시키고 과다한 자사주 보유 정당화할 것”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에도 배치…개정 상법 의미 퇴색”
[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국회에 발의된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관련 상법 개정안의 ‘경영상 목적’ 예외 조항이 과다한 자사주 보유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며 해당 조항의 삭제를 촉구했다.
포럼은 1일 논평을 내고 “지난달 25일 국회에 제출된 자기주식 의무 소각 관련 상법 개정안에는 시장에서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내용이 하나 새로 들어갔다”며 “자기주식 소각의 예외로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가 삽입된 것”이라고 짚었다.
해당 예외조항은 개정안 제341조의4 제2항 제5호로 회사가 ‘경영상 목적’으로 자기주식을 보유 또는 처분할 수 있다는 내용을 정관에 신설하고, 이 정관 요건에 맞게 자기주식 처분계획을 작성해 주주총회의 승인을 얻으면 신규는 물론 기존 보유 자기주식도 계속 보유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포럼은 이에 대해 “기존 자기주식 소각 관련 논의에서 공론화된 적도 없는 깜짝 조항”이라며 “자기주식 소각 법안을 후퇴시키는 것을 넘어 과다한 자기주식 보유에 대한 정당화 절차를 열어준 중대한 문제가 있으므로 반드시 삭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포럼은 해당 조항의 문제점으로 “발행주식 총수의 10% 이상은 물론 50% 이상에 이르기까지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는 기존 자기주식에 대해 ‘괜찮다’는 신호를 주게 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어 “이번 개정안은 자기주식 소각 논의가 당초 과도한 자기주식 보유라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망각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포럼은 “과다한 자기주식은 사실 임직원 보상, 긴급한 자금조달, 사업제휴 등 어떠한 목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며 “어떤 임직원에게 발행주식 총수의 10%는커녕 1% 넘는 규모의 주식보상을 하는 회사도 거의 없을뿐더러 그 정도의 대규모 자금조달이나 사업제휴 등은 신주발행으로도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장은 회사들이 보유한 과다한 자기주식이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며 모두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나아가 경영자들과 지배주주들이 아예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의무소각 법안에 대해 반대해 왔던 것을 누구나 안다”며 “그럼에도 경영상 목적이라는 대단히 포괄적이고 자기주식 처분계획을 구체적으로 작성할 수도 없는 요건 하에 보유할 수 있는 예외를 열어준다면, 시장은 결국 또다시 기업에 ‘추상적인 목적 공시 하에 지배력 강화를 위해 보유하라’는 신호를 준 것과 같다고 인식하게 될 것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어떤 신기술을 언제까지 도입하기 위해 얼마나 필요하다는 내용, 어떤 재무적 상황이 언제까지 발생해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내용 등 미래의 알 수 없는 경영상 필요성을 자기주식 처분계획에 구체적으로 적을 수 있는 회사가 과연 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포럼은 또 다른 문제점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를 명시한 상법 개정의 취지를 반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개정상법상 주주 충실의무 및 전체주주이익 공평대우의무에 따라 이사는 이제 신주발행과 자기주식 처분 시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경영상 목적’이라는 예외가 허용되면 이사가 전체 주주 이익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아도 되는 면책조항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포럼은 “과거 우리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시가를 기준으로 하는 합병비율 산정 절차만 지키면, 이사가 합병 과정에서 전체주주의 이익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아도 사실상 면책되는 것처럼 운영해 온 중대한 실무적 모순과 오류를 방치해 온 뼈아픈 경험이 있다”며 “현금교부형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한 소수주주 축출과 상장폐지 역시 주주총회 특별결의라는 절차가 소수주주의 이익과 재산 탈취에 악용돼 온 대표적 사례”라고 비유했다.
그러면서 “자기주식 보유·처분에 대한 ‘경영상 목적’ 예외 허용은 또 다른 형태의 절차적 면책수단을 열어줌으로써 어렵게 명시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원칙에 새로운 구멍을 만드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