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무역갈등 고조에..재계, 경제·통상전문가 사외이사 영입 확대
by하지나 기자
2023.02.27 16:02:14
효성, 유일호 전 기재부·성윤모 전 산업부 장관 추천
LG에너지솔루션·LS일렉트릭, 산업부 1차관 출신
현대차·포스코홀딩스 국제통상 전문가 영입
"세계 경기침체, 미중 갈등으로 대외환경 불확실성 커"
[이데일리 하지나 기자] 내달 국내 주요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운데 올해는 경제·통상 전문가들이 사외이사로 다수 포진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불확실한 대외환경 속에서 미·중 갈등을 비롯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각종 통상 이슈가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기업들도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27일 전자공시스템에 따르면 효성(004800)은 내달 17일 주주총회를 열고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사외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효성 관계자는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재정분야 전문가이고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경제·행정·산업기술 분야 전문가로서 이사회의 전문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왼쪽), 성윤모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사진=이데일리DB) |
|
유일호 전 장관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과 기재부 장관을 역임했다. 성윤모 전 장관은 행정고시 32기로 공직에 입문했으며 산업부 중소기업국, 대변인 등을 거쳐 문재인 정부 초대 특허청장에 임명됐다. 이어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산업부 장관을 지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도 산업부 출신의 통상 전문가인 박진규 고려대 기업산학연협력센터 특임교수를 사외이사 후보자로 추천했다. 박 교수는 산업부 통상정책국 국장, 무역정책관을 거쳐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실 통상비서관을 역임했다. 이후 산업부로 돌아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1차관을 지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잇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와 합작사를 설립하며 기술력과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와 IRA,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 등 전세계적으로 강해진 자국 중심주의 영향으로 경영 환경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 측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자국의 전기차 시장 보호 법령을 강화하는 추세로 배터리 및 배터리 원자재와 관련한 대외 환경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각국의 무역정책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는 등 지속 성장을 도모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박진규 전 산업통상부 제1차관(왼쪽부터), 김재홍 전 코트라 사장, 유명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사진=이데일리DB) |
|
미국과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 LS ELECTRIC(010120)도 산업부 출신 김재홍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이사장을 사외이사로 임명할 예정이다. 김 이사장은 산업자원부 국장, 산업부 제1차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 등을 지냈다. LS일렉트릭은 지난해 북미지역 매출이 70.7% 증가하면서 전체 매출 가운데 북미 비중은 12.7%에서 18.4%로 크게 늘어났다. 특히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인프라 개선에 1조2000억달러(약 1507조원)를 투자할 예정으로, 그 과정에서 전력 인프라에도 상당한 규모의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자동차(005380)도 국제 통상 전문가인 장승화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장 교수는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 위원, 산업부 무역위원회 위원장, 국제중재법원(ICC) 중재인 등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국제기구 및 정부 기관에서의 업무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IRA 등 당사가 당면한 통상 이슈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 뿐아니라 향후 더욱 긴박하고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통상 문제 해결을 위한 통찰력 있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포스코(005490)홀딩스도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재판장이자 국제상업회의소 ICC 부위원인 김준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사외이사로 임명할 예정이다. 포스코홀딩스의 경우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새로운 탄소 규제가 등장하면서 그룹 주력 산업인 철강 부문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005930)도 앞서 지난해 12월 임시 주총을 열고 유명희 전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바 있다.
탄소 중립이 국제 통상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잡으면서 관련 분야 전문가들도 눈길을 끈다. 삼성SDI(006400)는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 수소경제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를, 포스코인터내셔널(047050)은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이자 탄소중립위원회 및 전기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합부 교수를 사외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국내 기업들이 수출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데다 올해 역시 경기 침체와 미·중 갈등으로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면서 “그러다보니 경제·통상 전문가들을 사외이사로 영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