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칠승號 출항…첫 임무는 '강한 중기부' 만들기

by김호준 기자
2021.02.09 11:57:39

권칠승 중기부 장관, 지난 5일 공식 업무 시작
전임 박영선 보다는 ‘내실 다지기’에 주력할 듯
‘강한 중기부’ 내세워 높아진 중기부 위상 잇는 것도 과제
中企 근로자 문제에 관심…‘1호 정책’에 쏠리는 눈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난 5일 서울 마포 드림스퀘어에서 조봉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사장에게 소상공인 버팀목 자금 집행현황을 브리핑 받고 있다. (사진=중기부)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중소벤처기업부 ‘권칠승호’가 닻을 올렸다. 문재인 정부 마지막 중기부 장관일 확률이 높은 권칠승 장관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위기에 놓인 소상공인을 구해내고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벤처·스타트업 생태계 완비 등 과제가 산적한 상황이다. 박영선 전 장관이 ‘작은 것을 연결하는 힘’, ‘스마트 대한민국’ 등 큰 화두를 던지며 높인 부처 위상을 잇는 것도 권 장관의 과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중기부에 따르면 권 장관은 지난 3일 인사청문회 종료 이후 4일 문재인 대통령 재가를 거쳐 5일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권 장관의 ‘초고속’ 임명 배경에는 부동산이나 자녀 문제 등 특별한 흠이 없는 점도 작용했지만, 코로나19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는 만큼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챙기는 중기부 본연의 역할이 급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권 장관은 취임식을 생략하고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5일 산하기관인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으로부터 버팀목자금 집행 상황을 보고받은 권 장관은 “자금 지급뿐만 아니라 현실감 있는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역할 해주길 바란다”며 현장 목소리를 정책에 담아달라고 당부했다.

중기부 안팎에서는 권 장관의 첫 시험대가 ‘소상공인 손실보상 제도화’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예산이나 법제 골격을 짜는 건 기획재정부나 국회 몫이지만, 소상공인 피해를 파악하고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데에는 중기부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문 대통령이 손실보상 제도화 주무 부처로 중기부를 점찍은 만큼 ‘사각지대’를 없애 정책 완성도를 높이는 건 오롯이 권 장관의 손에 달렸다는 지적이다.

빠르면 오는 4월 지급이 점쳐지는 4차 재난지원금도 과제다. 특히 이번 지원금이 손실보상 소급 적용을 대신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존 새희망자금이나 버팀목자금과 달리 지급 기준이나 액수 등이 바뀔 가능성도 있다. 합리적인 재난지원금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집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 역시 권 장관의 임무다.



이러한 당면 과제와 함께 권칠승표 ‘1호 정책’이 무엇일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권 장관은 평소 중소기업 근로자 처우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 20대 국회 산자중기위 위원 당시 영세 중소기업의 임금 체불 현황을 분석해 중기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때문에 인력육성이나 일자리정책 담당 부서를 개편하는 등 중기부 조직 변화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5일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새희망 버팀목자금 수혜 식당을 방문해 격려하고 있다. (사진=중기부)
독립운동가인 황보선 선생의 외손인 권 장관은 지난 2004년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을 지내면서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입문했다. 2010년 경기도의회 의원을 거쳐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회에 입성했고, 지난해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국회 산업통상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 민주당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중소기업 관련 주요 정책과 현안에 대한 이해가 깊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처럼 대내·외 신임도가 높은 권 장관이 중기부로 오면서 조직 내부에서는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정부 18개 부처 중 막내 부처인 중기부는 여당 중진 의원 출신인 박영선 전 장관이 부임하면서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모(母)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나 비슷한 업무가 많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다른 부처 견제도 적지 않아 박 장관 사임 이후 위상이 다시 약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권 장관도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듯 인사청문회에서 “중기부는 창업 단계에 있는 부처라 공격적이고 영역을 넓히려는 본능이 있다”며 “이런 부분들은 국회와 상의를 통해서 결정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권 장관이 ‘강한 중기부’ 이미지 구축에 힘을 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비대면 산업이나 소재·부품·장비 육성, 3대 전략산업(BIG3) 등 부처 간 경계가 모호한 정책들도 중기부가 키를 쥘 수 있었던 건 ‘실세 장관’이었던 박 전 장관의 존재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때문에 중기부가 이 같은 정책을 계속 이끌려면 ‘경제적 약자를 챙기는 강한 중기부’ 이미지를 권 장관이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중기부는 권 장관 부임 이후 이런 내용을 담은 슬로건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소상공인 업계와 소통하면서 정부-업계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올해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나 주52시간제 등 업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규제들이 늘어나면서, 이해관계를 조율해 향후 보완 입법 과정에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는 것도 권 장관의 몫이다.

임채운 서강대 교수(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는 “그간 중기부가 정책 집행은 비교적 잘해왔지만, 근본적인 중소기업·소상공인 자생력 강화를 위한 정책 기획이나 입안자로서 역할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중기부가 부처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역할에 더욱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8일 대전 현충원을 방문해 남긴 방명록. (사진=중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