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회 투표율 20년내 최고 '51%'…경제난·反난민 정서 여파
by방성훈 기자
2019.05.27 14:25:50
유럽인 2명중 1명은 유럽의회 선거서 투표권 행사
反난민 기조 확산…유럽의회 선거 투표율 20년내 최고
경제 위기→對정치권 요구 확대…투표율 상승
극우 포퓰리즘 약진…향후 EU 정책결정서 파열음 예고
| 26일(현지시간) 벨기에 유럽의회 본부 내부 전광판에서 실시간으로 표결 및 출구조사 결과 현황 등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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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23~26일(현지시간)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과반을 넘는 50.95%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 2014년 선거에서 42.6%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그만큼 유럽인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자우메 두크 유럽의회 대변인은 “지난 20년 동안 가장 높은 투표율”이라며 “매우 의미있는 투표율 상승”이라고 강조했다.
유럽의회는 유럽연합(EU)의 입법기관이다. 이번 선거에서 선출된 의원 751명이 28개 회원국 5억1200만명을 대표하게 된다. 투표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EU에서 목소리를 내겠다.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反)난민 정서에 더해 경제적 어려움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유럽의회 선거 투표율은 지난 1979년 첫 선거에서 역대 최고치인 61,8%를 기록했다. 첫 선거는 직접선거 방식으로 치러진데다, 투표를 실시한 국가도 9곳에 불과해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저조한 투표율을 기록한 회원국이 늘어나면서 투표율은 하향 곡선을 그렸고, 직전 선거인 2014년에는 42.6%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과반이 넘는 51%를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투표율 상승은 정치에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한편으론 EU 내 분열이 심화한 여파여서 우려도 적지 않다.
투표율이 오른 것은 유럽 전반에 퍼져 있는 반난민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난민에 대한 반발이 각국 극우 표퓰리즘 정당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향하게 만들었고,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친(親)EU 유권자들이 선거에 동참하면서 전반적인 투표율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그간 EU의 난민 정책을 주도한 건 독일과 프랑스였다. 두 국가는 EU의 근본 가치인 평화와 공동번영을 앞세워 난민 포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난민들의 첫 유럽 관문인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은 “우리만 부담을 떠안고 있다”면서 지속적으로 불만을 제기했다. EU는 1990년 체결된 더블린 조약에 따라 난민들이 가장 먼저 입국한 국가에서 책임을 지도록 하고 있다.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등 EU에 늦게 합류한 중유럽, 동유럽 국가들은 난민 수용에 대한 연대 및 책임 분담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난민 재정착 및 할당 정책을 수용하라는 지속적인 EU의 요구에도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유럽 북부 국가들은 남부 국가들이 지중해 국경 순찰을 제대로 하지 못해 난민들이 독일,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까지 넘어오게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해 왔다.
결과적으론 이탈리아에선 반난민·반EU를 앞세운 극우 포퓰리즘 정부가 출범했다. 이탈리아는 이번 선거에서도 유럽 각국 극우 정당들의 결속을 주도하며 적극적인 선거 참여를 호소했다.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이끄는 반난민 포퓰리스트 정당인 ‘동맹’은 이날 출구조사 결과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됐다.
|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가 26일(현지시간) 유럽의회 선거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보고 만족스러워하고 있다. (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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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어려움이 투표율을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커지면서 정치에 눈을 돌리는 유권자들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주목할만한 점은 독일(48.1%→61.5%), 프랑스(42.4%→50.97%), 스페인(43.8%→64.32%) 등 인구가 많은 회원국에서 투표율이 크게 상승했다는 점이다. EU에서 탈퇴하거나 EU를 해체해야 한다는 ‘EU 무용론’이 거센 국가들이다.
경제규모에 비례해 EU 분담금을 내는 구조여서 이들 국가 국민들은 “우리 세금으로 다른 국가와 국민들을 먹여살리고 있다”는 인식이 많다.
EU는 이달초 올해 유로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2월 1.3%에서 1.2%로 내렸다. 3개월 전 1.9%에서 1.3%로 이미 한 차례 대폭 낮춰 잡은 것이어서 유로존 경제성장 엔진이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앞서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달 올해 유로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3%로 내다봤다. 지난해 10월(1.9%) 대비 0.6%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독일(1.9%→0.8%), 프랑스(1.6%→1.3%), 이탈리아(1.0%→0.1%) 등 주요국 전망치가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독일(AfD)·프랑스(국민연합)·스페인(포데모스)·이탈리아(오성운동) 등의 극우정당들은 유럽 경제난이 단일 통화(유로·Euro) 체제에 따른 무역불균형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영국이 EU에 발을 담그면서도 파운드화를 유지해온 것이나, 종국엔 브렉시트를 결심하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체코·슬로베니아·헝가리·루마니아 등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유럽 국가들이 EU에 가입한 이후부터 유럽 통합 반대 목소리가 대폭 확대된 것도 궤를 같이 한다. 이민장벽이 허물어지면서 동유럽으로부터 서유럽 국가들로 이민행렬이 이어졌고, 난민 유입까지 겹쳐 서유럽 국가에선 반발이 폭주했다.
현재까지 집계된 투표 결과를 보면 이번 선거에선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이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EU의 난민·기후·대(對)테러 정책, 브렉시트 해법, 경제성장 및 실업 문제 등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 주목된다.
각국 중도좌파 정당들은 패배를 받아들이면서도 “끔찍한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는 “변화의 바람을 느꼈다”면서 “동맹이 승리하면 유럽에서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쟁점들과 관련해 향후 EU 분열이 더욱 심화될 것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EU 정상회의는 선거 종료 이틀 후인 오는 28일 EU 집행위원장 추천을 논의한다. EU는 지난 2014년부터 유럽의회 선거결과와 EU 집행위원장 선출을 연계, EU 행정부 수반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효과를 가미토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