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에 울려퍼진 反트럼프…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여파

by방성훈 기자
2018.01.24 14:48:48

인도 모디 총리 이어 캐나다 트뤼도 총리도 美비판 가세
기업인들 "美우선·보호무역, 세계 발전에 도움 안돼" 한목소리
트럼프 폐막연설에 관심 집중…향후 세계 무역 ''변곡점'' 관측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부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의 세이프가드 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사진=AFP PHOTO)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막을 올린 세계경제포럼(WE), 일명 ‘다보스포럼’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전날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로 자유무역주의를 겨냥해 사실상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보스포럼은 보호무역주의 배격 및 세계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다. 올해 포럼 주제 역시 ‘분열된 세계에서 공유 가능한 미래 만들기’다. 자유무역주의 옹호론자 입장에서 보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적(敵)이나 다름없다.

예상대로 다보스포럼의 주된 화두는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겠다고 선언한데 이어, 행사 개최 불과 하루 전 외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관세를 부과하는 세이프가드 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 9월 중국에서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개국) 정상회의 개막을 앞두고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했을 때와 비슷한 효과라고 볼 수 있다.

기조연설에 나선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세계화에 반대하는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면서 “그것은 단순히 세계화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세계화 흐름 자체를 뒤집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결과 새로운 관세, 비관세 장벽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양자·다자 간 무역협상은 정체되고 있다”면서 “대다수 국가의 해외 투자가 줄어들고, 해외 공급체인의 성장세도 멈춰섰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해 1월 취임 직후 세계 최대 규모의 다자간 무역협상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중국 등을 겨냥한 지적재산권 침해 조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및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NAFTA) 재협상 등에 이어 전날 세이프가드 조치까지 지난 1년 동안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에 역행하는 행보를 지속했다.



미국과 나프타 재협상을 벌이고 있는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도 가세했다. 그는 특별연설을 통해 “남쪽에 있는 이웃 나라에 나프타가 그 나라와 세계 경제에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는지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또 미국이 TPP에서 빠진 뒤 일본과 호주 등 11개국이 개정 추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서명 합의를 환영하며 “전 세계 교역 촉진을 기념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뤼도 총리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의 TPP 탈퇴 결정 및 나프타 탈퇴 언급을 비판한 것이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사진=AFP PHOTO)
기업인들도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비판을 이어갔다. 도이체포스트의 최고경영자(CEO) 프랑크 아펠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우린 역사로부터 보호무역주의가 결국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며 “보호무역주의는 장기적으로 결코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관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제품 가격이 비싸지고 고용도 보호하지 못할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아프리카계 은행인 에코뱅크의 그레그 데이비스 최고재무책임자(CFO)도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세계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가 아프리카에 무역장벽을 세우면 (사람들은) 더이상 초콜릿을 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년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보스포럼에 처음 등장해 “세계화는 자연스러운 역사적 흐름”이라고 밝혀 환영받았던 것과는 정반대 분위기다. 그동안 TPP 등 무역장벽을 허물고 세계화를 주도해 온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집권 1년 만에 ‘공공의 적’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26일 폐막 연설에서 어떤 메세지를 던질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세계 무역질서의 방향을 결정짓게 될 중요한 계기라는 전망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의 폐막 연설이 다보스 시대의 종말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무역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