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금과옥조’는 없다

by김호준 기자
2019.09.05 15:59:58

금산분리 규제로 한국서 금지된 지주사 CVC 설립
전 세계에서 CVC 설립이 불가능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
지주사 체제 대기업들의 벤처·스타트업 투자 가로막아
"4차산업혁명 시대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할 규제 없어"

[이데일리 김호준 기자] “한국에서 ‘금산분리’는 거대한 하나의 철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변화를 줘야할 때가 아닙니까?”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 토론회’에 참가한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CVC(기업 내 벤처캐피탈)가 성공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어렵나”라며 “규제가 너무 많은 부분에 중첩돼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토론회 주제는 CVC 확대를 위한 규제개혁 방안이었다. CVC란 기업 내에 설립하는 벤처캐피탈로, 주로 기업 자체 잉여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해 혁신적인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산분리 규제를 담고 있는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라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가 창업투자회사, 신기술투자금융회사 등 형태의 CVC를 설립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지주사 체제인 재계 서열 3·4위 SK와 LG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벤처투자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규제로 대기업 지주사가 CVC를 설립하지 못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발제를 맡은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라고 일갈했다.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해외 기업들은 이미 CVC를 통해 벤처·스타트업 투자를 더욱 활성화하고 있다. 알리바바나 텐센트, 샤오미 등 중국의 IT 대기업들은 CVC를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이들과 연결된 하나의 사업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전체 벤처투자 금액의 50%가 CVC를 통해 이뤄진다. 일본 역시 벤처투자금 44%가 대기업 투자일 정도로 비중이 높다.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대기업 엑셀러레이터사의 한 관계자는 “수영선수는 작은 저항이라도 줄이려고 꽉 조이는 수영복을 입는데, 우리나라 규제당국에서는 스타트업들에게 ‘트레이닝복이라도 열심히 뛰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실정”이라며 여전한 규제 환경을 비판했다.

공정거래법 분야를 전공한 한 변호사 역시 “아무리 금산분리 원칙이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지켜온 틀이라고 해도 4차산업혁명 시대에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할 규제는 없다”며 “벤처캐피탈에 금산분리 예외를 허용하는 것이 완전히 그 틀을 허무는 일도 아니다”고 벤처캐피탈에 한해 금산분리를 예외로 적용할 것을 주장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나온 관계자들도 참가했다. 그러나 이들은 끝내 토론 석상에는 나오지 않았다. 두 관계자 모두 “플로어(관객석)에서 이야기를 듣겠다”며 토론 참석을 고사했다. 이 광경이 마치 벤처업계의 규제개혁 목소리를 정부가 외면하려는 모습처럼 보였다면, 그것은 기자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