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설 잊은 KIST 도핑콘트롤센터…철통보안 속 24시간 근무

by조용석 기자
2018.02.14 16:32:37

카드·지문인식 2중 절차…WADA 직원 상주 감독
설 연휴도 24시간 근무…올림픽 기간 4천개 시료 분석
벤 존슨 잡은 권오승 센터장…“예산지원·연구인력 확보”

올림픽 기간 KIST 도핑콘트롤센터는 카드와 지문인식 이중절차를 거쳐야 출입이 가능하다. 도핑콘트롤센터 입구 모습(사진 = 조용석 기자)
[이데일리 조용석 기자]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이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받는 이유는 ‘약물’ 때문이다. 러시아가 국가 차원의 조직적 도핑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계 스포츠계가 발칵 뒤집혔다. 러시아는 결국 평창동계올림픽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도핑컨트롤센터(DCC)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WADA(세계반도핑기구)로부터 공인을 받은 도핑 검사시설이다. DCC는 평창올림픽을 ‘클린올림픽’으로 만들기 위해 설 연휴도 잊고 삼엄한 보안 속에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종전에도 연구원 내에서 가장 접근하기 힘든 곳이었는데 평창올림픽 시작 후 더 엄격해졌습니다.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때보다 훨씬 삼엄해진 분위기입니다.”

DCC에 보안 상황에 대한 KIST 관계자의 설명이다. DCC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자리한 KIST 본원 내 한 건물의 6층 대부분과 4·5층 일부 등 1367㎡(414평)를 사용한다. 6층만 사용했지만 올림픽 기간 IOC 및 WADA 관계자를 위해 4·5층도 쓴다.

평창에서 채취한 소변 및 혈액시료는 하루에 3차례씩 DCC로 운반된다. 샘플은 지하 1층 주차장 내 차단벽이 설치된 장소(시료접수실)에서 전용 승강기를 타고 6층 시료저장실로 향한다. 경비 관계자는 “시료차량이 도착하면 인력을 늘려 감시를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출입과정도 까다롭다. DCC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카드와 지문인식 등 이중절차를 거쳐야만 출입이 가능하다. 또 시료접수실 등 주요장소는 반드시 2인이 동시에 움직여야 하고 일정시간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종전 올림픽 때와 달라진 부분이다.

이런 절차는 모두 시료가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앞서 WADA는 소치 올림픽 당시 러시아 정부 관계자가 한밤중에 시료를 바꿔치기 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실험실 및 분석실 내 감시도 삼엄하다. WADA 소속 직원이 DCC에 상주하면서 관리감독하고 IOC 자격의 도핑디렉터도 매일 센터를 방문한다. 또 DCC 사무실 전체에는 사각지대가 없는 CCTV가 설치돼 24시간 모든 장면이 녹화된다.

권오승 DCC 센터장은 “외국의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며 시료 분석의 정확성을 높이는 동시에 관리감독이 강화됐다”며 “(소치올림픽 여파로)보안시설 및 시료 접수실 통제규정이 한층 엄격해졌다”고 설명했다.

KIST 도핑콘트롤센터는 올림픽 기간 24시간 3교대 근무체제로 운영된다. 사진 가운데 의자에 앉은 이가 권오승 센터장이다. (사진 = KIST 제공)
DCC 직원 165명(시료분석인원 135명)은 지난 1일부터 3교대 근무조로 나눠 24시간 근무 중이다. 평창올림픽은 9일 개막했지만 사전 도핑검사도 해야 하기에 DCC는 일주일 앞서 ‘올림픽 모드’로 전환했다. 설 연휴 기간에도 올림픽은 진행되기에 24시간 3교대 근무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24시간 근무체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빠른 분석을 위해서다. 결과가 신속히 나와야 부정 약물을 사용한 선수가 다음 단계로 진출하는 것을 최대한 빨리 막고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 센터장은 “분석보고시간은 대부분의 시료의 경우 24시간”이라며 “분석방법의 종류에 따라 가장 긴 보고시간은 72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늦어도 3일 내에는 부정약물 사용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얘기다.

분석해야 할 시료가 워낙 많은 이유도 있다. DCC는 약 2달에 걸친 평창올림픽 기간 4000개의 시료(장애인 올림픽 포함)를 분석한다. 일반적으로 DCC가 1년에 분석하는 시료수가 6000개 정도임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업무량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WADA가 규정한 금지약물은 약 400개에 달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금지약물이 40개 수준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10배가 넘게 늘었다.

재밌는 부분은 WADA가 DCC의 분석능력을 점검하기 위해 수시로 ‘스파이 시료’(이중맹검시료)를 보낸다는 점이다. 스파이 시료에는 WADA만 알고 있는 성분이 들어있다. 이를 제대로 분석·보고하지 않으면 인증점수가 크게 깎인다. WADA는 올림픽 기간 4~5개의 이중맹검시료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DCC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캐나다 벤 존슨의 소변 시료에서 금지약물이었던 스테로이드 계열의 스타노조롤을 발견해 화제를 모았다. 당시 벤 존슨의 약물복용을 최종 확인한 이가 막내 연구원이었던 권 센터장이다.

1984년 문을 연 DCC는 서울올림픽을 포함해 2002년 한일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등을 성공적으로 치러내기도 했다.

WADA가 공인한 도핑실험실은 DCC를 포함해 전 세계 25개국 28개 랩에 불과하다. WADA는 매년 공인 유지여부를 판단한다.

소치올림픽 사태 등으로 부정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 WADA가 실험실에 요구하는 기준도 매년 높아져 공인 탈락·취소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에도 3곳(프랑스·루마니아·콜롬비아)이 탈락했고, 2곳(카자흐스탄·남아공)이 취소됐다.

권 센터장은 WADA의 기준에 맞춘 도핑실험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산지원과 숙련된 전문가 양성을 강조했다. DCC는 올림픽을 위해 몸집을 늘렸지만 평상시에는 정규직 연구원이 권 센터장을 포함해 8명에 불과하다.

그는 “여러 차례 WADA 실사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지적사항에 대해 예산 집행이 늦어지면서 준비가 지연되기도 했다”며 “분석법과 분석연구 개발을 위해서는 현재 8명의 연구원이 16명까지 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핑콘트롤센터가 자리한 KIST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 차단ㅂㄱ이 설치돼 있다. 시료를 실은 차량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 = 조용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