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만원 소득자도 면제…건보료 부과 ‘구멍’

by장종원 기자
2013.10.28 21:15:17

피부양자 소득합산 안돼 연 7천만원 벌어도 0원
건보료 잣대 국가장학금·의료비 지원사업도 한계
정부 "소득 중심 부과체계 개편 추진"..한계도 지적

[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경기도 수원에 사는 박모(61)씨는 연간 4001만원(금융소득),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모(61)씨는 7000만원(금융+연금소득)을 번다. 박씨는 매월 건강보험료로 월 32만원을 내지만 연간 3000만원을 더 버는 김씨는 건보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돼 있어서다.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을 두고 형평성 논란이 뜨겁다. 건강보험료 부과기준에 대한 불신이 건강보험에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건강보험 부과체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피부양자제’다.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경우, 직장가입자인 자녀 등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해 주는 제도다. 일부 자산가들이 건보료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발생해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이에 정부는 8월부터 연금소득이나 기타·근로소득이 연 4000만원(월 334만원)이 넘으면 직장인 자녀의 건강보험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고액연금소득자에도 건강보험료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조치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약 2만1000여명의 고액연금소득자 등이 건강보험료를 월 17만~18만원씩 내게 됐다.

하지만 형평성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금융소득과 연금소득을 합산해 건보료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규정 때문이다. 일례로 금융과 연금소득이 각각 연간 3000만원씩 총 6000만원을 버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녀 명의 건강보험에 피부양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앞서 사례에서 소개한 연소득 7000만원의 김씨가 건보료를 면제받는 이유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는 지역가입자 K씨가 매달 부담하는 건보료는 27만2690원에 불과하다. 그가 현재 거주하는 타워팰리스 전세금 5억7000만원은 건보료 산정기준에서 제외된 반면 동거하는 K씨 모친이 소유한 전남소재 390만원 짜리 농가주택이 건보료 산정 기준이 된 때문이다. 건보공단은 지역가입자가 전세나 월세에 살면서 따로 주택을 보유한 경우, 건보료 산정시 보유 주택가격만 반영한다.



농어민에게 주어지는 혜택도 논란거리다. 농어민은 연소득이 500만원 이하인 경우 건보료를 50%를 경감해 준다. 보유 재산은 반영기준에서 제외돼 있어 수십억대 토지를 소유한 땅부자라도 연소득이 500만원 이하면 건보료를 감면 받는다.

구멍뚫린 건보로 부과 기준이 저소득층 지원 기준으로 활용되면서 예산낭비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최근 감사원은 정부가 건보공단의 보험료 자료를 기준으로 국가장학금을 지급하면서 고소득자들에게도 장학금 혜택을 부여한 사실을 적발했다. 또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본인부담금 상한제, 저소득층을 위한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등도 건보료 부과 기준을 활용하고 있어 고소득 자산가들에게까지 혜택이 부여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꾸려 올해 말까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득 중심으로 건보료 부과기준을 개편하기로 했다. 다만 일시에 기준을 변경할 경우 발생할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주요 건보료 반영기준 중 하나인 재산 반영비율을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가 구상중인 개선방안으로는 논란을 해소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득만을 가지고 건강보험료를 부과할 경우, 건보료 납부액 감소가 불가피해 건보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추가 재원마련이 수반돼야 한다. 아울러 단계적 접근 방식은 현행 불합리한 부과방식을 일정부분 인정하는 것이어서 형평성 논란이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소득중심의 건보료 부과 방식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백억원대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여도 수입이 0원이면 건보료를 면제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