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정권 취약성 노출"…스트롱맨 위협하는 이슬람 테러리즘
by이소현 기자
2024.03.25 15:40:26
5선 대관식 5일 만에 모스크바 테러 발생
'스트롱맨 리더십' 굴욕…"평화·안전 약속 배반"
전쟁·에 매몰 돼 무너진 안보…공공안전 참사
美정보 무시하다 허찔린 푸틴…우크라·서방 탓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벌어진 테러로 3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최근 5선 고지에 오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총체적 굴욕을 안겨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과의 대결 등 신냉전 기류에 매몰된 푸틴 정권이 과시해온 안보 역량이 무너지면서 공공안전 참사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테러로 국가 애도의 날로 지정한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 외곽의 노보오가리보주 관저 교회를 방문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사진=AF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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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현지시간) CNN 등 외신을 종합하면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를 통해 집권 5기를 확정 지은 푸틴의 ‘스트롱맨 리더십’이 한계를 드러냈다.
푸틴의 연설문 작성자를 지낸 반체제인사 압바스 갈랴모프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푸틴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온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테러는 푸틴이 새로운 6년 임기를 약속한 지 불과 5일 만에 발생했다.
CNN은 “많은 러시아인이 푸틴에게 투표한 이유인 안정과 보안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수년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의 독재자는 광활하고 혼란스러운 나라의 질서를 보장할 지도자로 여겨져 왔지만, 푸틴의 24년 집권 기간 중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WSJ은 이번 모스크바 테러를 ‘이슬람 테러리즘의 귀환’으로 규정하며, 러시아가 개발도상국과 이슬람 국가와 동맹을 맺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에 맞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세계관과 상충되면서 앞으로 크렘린궁에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러시아는 미국이 극단주의 세력의 대형테러 가능성을 미리 경고했지만 묵살했다. 푸틴은 모스크바 테러 사흘 전 “명백한 협박”이라며 “우리 사회를 겁주고 불안정하게 하려는 시도”라고 일축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에서 푸틴 정권의 권위주의적 장악력에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이들이 사실상 없기에 어떠한 비판도 나오지 않는다”며 “푸틴이 미국의 정보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을 받거나 대가를 치를 가능성도 희박하다”고 내다봤다.
또 모스크바 테러와 같은 공공안전 실패의 원인 중 하나로 전시체제 속에서 러시아의 정보기관의 대테러 임무가 분산된 점이 꼽힌다. 그리고리 세르시코프대테러 전문가는 WSJ에 “연방보안국(FSB)이 우크라이나전과 관련 위험에 너무 집중한 것 같다”며 “너무 많은 전선에서 싸우면서 과부하가 걸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러시아 학자는 WP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서방의 흔적을 찾으려고 할 것이 분명하지만 아마 어떤 조사든 러시아 정보기관의 실패를 발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 24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바스만니 지방법원에서 모스크바 테러 용의자 중 한명이 피고인 수용소 유리벽 뒤에 앉아 있다.(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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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푸틴 정권은 내부에 일어나는 모든 경고음이나 악재를 서방의 허위 정보나 악성 선전전으로 모는 행태는 계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푸틴은 내부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모습을 감췄다가 뒤늦게 나타나 서방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곤 했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푸틴은 모스크바 테러 발생 후 몇시간 사라졌다가 나타나 긴급사태에 입을 열었다. IS(이슬람 국가) 분파인 ISIS-K가 이미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자처하고 나섰지만, 우크라이나와 연계성을 주장했다. 푸틴은 “(테러범들이) 숨으려고 했고, 우크라이나로 이동했다”며 “예비 조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준비돼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대외 선전매체인 RT도 “미국의 테러 위협 경고가 미국이 테러 준비에 참여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를 통해 푸틴 정권은 우크라이나 장기전을 버틸 전시체제를 유지할 동력으로 서방에 대한 전국민적 반감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인들이 안보·정보 당국에 침묵한다면 푸틴은 저런 상황을 다시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푸틴 정권이 권위주의 체제를 강화하면서 국민을 상시 감시하는 ‘빅브라더 국가’와 다름없지만, 안보 자산은 전쟁에 집중되고 선전 때문에 테러 위협 등 공공 안전 정책이 뒷전으로 밀려 러시아인들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모스크바의 한 사업가는 WP에 “(테러가 발생한) 크로커스 시티는 공연장이 많은 거대한 장소”라며 “경찰이 많이 있었어야 했지만 거대 공공행사의 안전에 책임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싱크탱크 카네기유라시아센터의 선임 연구원은 WP에 “러시아는 지금 모든 곳에서 모든 시민을 밀착 감시하는 분위기가 있는 경찰국가”라며 “보안이 점점 강화되는데 이런 사태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가 진짜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