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않은 부모 상속권 박탈…'구하라법' 5년만에 현실화

by송승현 기자
2024.08.28 16:08:54

양육의무 버린 부모 상속권 박탈 개정안 통과
"구하라 어머니같은 상속인, 상속권 배제될 것"
부양의무 미이행 정도 기준 없어 혼란 우려도
"상속제도 전반 개편·공정증서 유언 활용 필요"

[이데일리 송승현 성주원 기자] 지난 2019년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난 후 양육을 포기했던 친모가 유산을 상속하려 하면서 촉발된 이른바 ‘구하라법’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된 이후 무려 5년만이다. 지난 4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단이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법조계에서는 자녀를 돌보지 않는 부모가 상속을 받는 등 사회적 통념과 어긋난 행태들이 고쳐질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상속권을 박탈할 정도의 부양의무 미이행 기준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것 등과 관련해선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만큼 관련 분쟁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가수 고(故) 구하라 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국회는 28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부양의무를 위반한 직계존속의 상속권을 상실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구하라법’(민법 개정안)을 재석 의원 286명에 찬성 284명, 기권 2명으로 통과시켰다.

이번에 여야 합의로 통과된 민법 개정안은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미성년자에 대한 부양의무로 한정)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 △그 밖의 심히 부당한 대우 등에 대해 가정법원을 통해 상속권 상실선고를 할 수 있게 했다.

개정안은 오는 2026년 1월부터 시행된다. 대신 국회는 헌법재판소가 고인 자녀·배우자·부모의 유류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된 경우에도 소급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이 법 시행일부터 6개월 이내에 상속권 상실 청구를 신청해야 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민법 개정안의 통과로 향후 부양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유족들이 상속재산을 온전히 물려받을 수 있게 됐다”며 “국민 법 감정에 부합하는 상속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사회적 통념에 맞는 상속제도 개편이 이뤄졌다고 환영하면서도 당분간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는 “상속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을 구체적으로 판단해 상속에서 배제하자는 취지로 구하라 어머니 같은 사람은 이제 상속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민법 개정안에서 설시하고 있는 상속권 상실선고가 가능한 요건이 구체적이지 않은 건 혼란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어떤 범위까지 상속권 상실선고를 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상태다. 이로 인해 법 시행 초기 법원에서도 비슷한 사안을 두고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수영 법무법인 율호 대표변호사는 “상실사유가 법적으로 규정됐다고 하더라도 구체성은 미흡한 상황”이라며 “상속권 상실선고에 해당한다고 여겨지는 사실관계가 구체적으로 그에 부합하는지는 사안마다 법원의 판단이 필요해 보이고 판례가 확립되기 전까지는 관련 분쟁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상속 문제에 대해 법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더 짙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와 상속제도 전반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조 변호사는 “상속문제가 분쟁 없이 간단히 해결되기보다는 법원에 의존해 해결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가족제도의 변화, 저출산 및 고령화의 인구구조 변화 등을 감안해 구하라법처럼 일부의 상속제도 개편보다는 대폭적인 상속제도의 개편이 논의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속인 배제 요건이 신설된 만큼 상속 갈등을 피하기 위해선 피상속인이 생전 공정증서를 통한 유언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단 조언도 나왔다. 한국가족법학회장인 전경근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상속인이 공정증서를 통해서 유언을 하면서 (부양의무를 저버린 부모 등에 대해) ‘상속에서 배제하라’고 하면 명확해진다”며 “유언이 없을 경우에는 법적 분쟁이 생길 수 있는 소지가 있어 갈등이 커질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