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해체, 고시 폐지..'국가개조 청사진' 제시(종합)

by피용익 기자
2014.05.19 16:35:17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19일 대국민 담화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대국민 사과 △해양경찰 해체를 비롯한 정부조직 개편 △관피아 척결을 위한 공직사회 개혁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 후속조치 관련 내용을 담았다.

세월호 사고 이후 해경과 안행부, 해수부 등의 대응이 적절치 못했다는 점에서 정부 조직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그러나 해경 해체와 안행부·해수부 기능 축소는 예상보다 더 나아간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고시 제도의 폐지를 예고하고, ‘관피아(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척결을 거듭 강조함에 따라 공직사회의 대대적인 변화가 뒷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와 정부는 대국민 담화 후속조치에 착수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정부조직 개편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직 개편은 구조 업무에 실패한 해경을 해체하고 국가재난안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세월호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해경을 질책한 후 “고심 끝에 해경을 해체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써 해경은 지난 1953년 출범한 이후 61년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됐다. 해경의 수사·정보 기능은 경찰청에 이관하고, 해양 구조·구난과 경비 분야는 신설하는 국가안전처로 넘긴다. 이를 통해 해양안전 전문성과 책임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구상이다.

‘안전’을 강조해온 박 대통령의 의지가 이름에 담긴 안행부도 핵심 기능을 잃게 됐다. 안전 업무는 국가안전쳐로 통합하고, 인사·조직 기능은 신설되는 국무총리실 소속 행정혁신처로 옮겨간다. 안행부는 행정자치 업무만 담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해체나 다름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수부의 기능은 해양산업 육성과 수산업 보호 및 진흥에 국한된다. 해양교통관제센터(VTS)는 국가안전처로 이관된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조직개편 구상을 통해 국가안전처의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서 육상과 해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형의 재난에 현장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는 것이 골자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의 안전과 재난을 관리하는 기능이 여러 기관에 분산돼 있어서 신속하고 일사불란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컨트롤타워의 문제도 발생했다”고 지적하며 국가안전처 신설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만들어 각 부처에 분산된 안전관련 조직을 통합하고,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서 육상과 해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유형의 재난에 현장 중심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

육상 재난은 현장의 소방본부와 지방자치단체, 재난 소관부처가 공동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해상 재난의 경우 서해·남해·동해·제주 등 4개 지역본부로 구성된 해양안전본부에서 총괄해 현장 구조·구난 기능을 대폭 강화한다. 항공 재난을 비롯해 에너지·화학·통신 인프라 등 사회 발전으로 인해 다양화하는 각종 재난에 대해서는 특수재난본부를 설치해 대응키로 했다. 특히 첨단장비와 고도의 기술을 갖춘 특수기동구조대를 국가안전처 산하에 신설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국가안전처가 신설되면 국민 여러분과 재난안전 전문가들의 제안을 광범위하게 수렴해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가안전처 구상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구성원 선발을 전문가 위주의 공채로 진행하며, 순환보직도 엄격히 제한해 전문성을 계속 키울 수 있게 하겠다”고 한 점이다. 수십년간 ‘계급제’로 이어져 온 공무원 사회에 전문성에 맞춰 인원을 선발하는 ‘직위분류제’로의 개혁이 국가안전처 신설을 통해 처음 시도되는 셈이다.

박 대통령은 나아가 “지금 우리 공직사회는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무사안일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며 공직사회 개혁 방안에 대한 구상을 상세하게 밝혔다. 채용부터 퇴직까지 ‘비정상적’ 관행을 뿌리뽑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공직사회 개혁의 기본 방향은 ‘개방성’과 ‘전문성’으로 요약된다.

무엇보다 고시 제도 폐지를 예고한 점이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민간 전문가 진입이 보다 용이하도록 5급 공채와 민간경력자 채용을 5 대 5의 수준으로 맞춰가고, 궁극적으로는 과거 고시와 같이 한꺼번에 획일적으로 선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직무능력과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직무별로 필요한 시기에 전문가를 뽑는 체제를 만들어 가겠다“고 설명했다.

박 대통령은 현행 개방형 충원 제도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선 ”중앙에 별도의 ‘중앙선발시험위원회’를 설치해 공정하게 민간전문가를 선발해서 부처로 보낼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공직사회의 문제점으로 계속 지적받아온 순환보직제를 개선해서 업무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또 ”이번 사고는 오랫동안 쌓여온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의 관행이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해수부 퇴직관료의 해운조합 재취업 관행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러면서 ‘관피아’ 척결과 관련해서도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안전감독·인허가 규제·조달업무 등과 직결되는 공직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는 공무원을 임명하지 않기로 했다. 또 공직자윤리법 개정으로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을 더욱 효과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민관유착을 근절키로 했다.

특히 정부입법안으로 국회에 제출될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에는 해운조합이나 한국선급 등 취업제한 대상이 아니었던 조합·협회를 포함해 퇴직 공직자의 취업제한 대상기관 수를 3배 이상 확대하고, 취업제한 기간을 퇴직후 2년에서 3년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기게 됐다.

아울러 업무관련성 판단 기준을 소속부서가 아니라 소속기관 업무로 확대해 실효성을 높이는 한편 고위공무원에 대해 퇴직 후 10년간 취업기간 및 직급 등을 공개하는 취업이력공시제도 도입하는 등의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시키겠다고 박 대통령은 밝혔다.

이와 관련, 박 대통령은 국회에 계류 중인 이른바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과 관련, ”전현직 관료들의 유착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했다. 아울러 필요할 경우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의견을 일부 수용한 것이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에서 민간의 참여를 배제할 경우 논란이 확산될 것을 고려한 조치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특히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업체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 등 비정상적인 사익추구였다“고 지적하면서 청해진해운과 선장 및 일부 승무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을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청해진해운에 대해 ”지난 1997년에 부도가 난 세모그룹의 한 계열사를 인수해 해운업계에 진출한 회사“라며 ”17년 전, 3000억원에 가까운 부도를 낸 기업이 회생절차를 악용해 2천억원에 이르는 부채를 탕감받고, 헐값에 원래 주인에게 되팔려서 탐욕적인 이익만 추구하다 이번 참사를 내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이런 일을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 앞으로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해서 피해자 배상재원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그런 기업은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어 “범죄자 본인의 재산뿐 아니라, 가족이나 제3자 앞으로 숨겨놓은 재산까지 찾아내어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선장 및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위에 대한 처벌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서 수백 명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과 승무원의 무책임한 행동은 사실상 살인행위”라고 거듭 비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 중에서는 대규모 인명피해를 야기하는 중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수백 년의 형을 선고하는 국가들이 있다”며 “우리도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하거나, 먹을거리 갖고 장난쳐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는 그런 엄중한 형벌이 부과될 수 있도록 형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또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안전의 중요성을 되새기기 위해 추모비를 건립하고, 4월16일을 국민안전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다.

청와대는 이날 박 대통령의 담화 직후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고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논의했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후속조치를 리스트로 만들고 관련 부처와 이행 시간표를 정리해 조속한 시기에 입법 등 후속조치를 실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