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공소장]<上>"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성추행 법관보다 가혹 인사"

by노희준 기자
2019.02.18 13:39:54

양승태 전 대법원장 검찰 공소장 내용
허위 정신감정으로 '조울증' 꾸미기도
신년인사 때 법원장들에게 기초자료 수집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대법원의 정책에 반대하는 법관(물의 야기 법관)들에 대해 성추행, 음주운전 등 비위를 저지른 법관들보다도 가혹한 인사불이익 조치를 부과하기도 했다”

이데일리가 확보한 양승태 전 대법관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양 전 대법원장 사법부는 사법행정을 비판하거나 사법행정에 부담을 줬다는 이유로 판사들을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한 뒤 이런 보복성 인사를 취한 혐의를 받는다. 이는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는 법관을 통제할 의도하에 자의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인사권을 변칙적인 징계 및 문책 수단으로 남용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법행정의 한계를 넘어 위법하고, 법관들의 자유로운 의견 표명, 정당한 비판을 할 권리를 방해할 수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그런 물의야기 법관이란 어떤 이들이었을까. 원래 양승태 사법부는 음주운전이나 성추행 등 비위를 저지른 판사를 물의 야기 법관으로 분류했다. 그러다 ‘눈엣가시’ 같은 법관들을 법원행정처의 방침과 정책에 순응하도록 인사권을 변칙적인 징계 내지 문책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하면서 엉뚱한 이들이 여기에 속하게 됐다.

바로 사법행정 방침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법관들, 대법원의 입장과 배치되는 ‘튀는’ 하급심 판결을 선고한 법관들,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등 사법행정에 부담을 주는 법관 등이다.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11일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노진환 기자)




양승태 사법부는 지난 2013~2017년 매년 정기인사 때마다 이런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 이름이 올라간 판사는 2013년 2명, 2014년 4명, 2015년 6명, 2016년 12명, 2017년 7명 등이다. 여기에는 5년 연속해서 포함된 판사도 있다. 김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혐의에 무죄를 선고한 판결에 대해 ‘지록위마’(사실이 아닌 거짓이라는 의미)라고 하는 등 법원 내부망에 대법원판결을 비판하는 글을 올린 판사다.

특히 김 부장판사의 경우 2015년에는 별다른 물의 야기 사유가 없게 되자 양승태 사법부는 마치 그가 조울증을 앓고 있는 것처럼 꾸몄다. 이를 위해 그가 소속 법원 판사들에게 워크샵에 참석하지 못한 사유와 가정의 우환에 대해 설명한 이메일을 근거로 당사자 동의 없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허위 정보를 제공해 정신감정까지 의뢰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이 과정에서 허위 정신감정을 받아내기 위해 그가 조울증 치료제인 ‘리튬’을 복용한 사실이 있다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실제 이런 이유로 업무 평정에서 “정서적인 불안전성이 여전히 잠복돼 있는 상태로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음” 등의 평가를 받아 ‘하(下)’ 등급을 받았다. 이는 법원조직법상 법관 연임 제한 사유인 ‘신체상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판사로서 정상적인 직무를 수행할수 없는 경우’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사유다.

특히 당시 법원행정처는 물의 야기 법관 분류 자료로 사용하기 위해 매년 각급 법원장들로 하여금 법관들의 근무평정표와는 별도로 소속 법관들의 사법행정 비판 행적이나 사법행정에 부담을 준 내용 등을 정리한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작성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각급 법원장들은 이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대법원장 신년 인사를 위해 대법원에 방문할 때 ‘인비’(인사비밀)라고 표시한 봉투에 담아 법원행정처장에게 직접제출했다고 검찰은 파악했다. 결국 양승태 사법부 시절 전국 각급 법원장들이 양승태 법원행정처의 판사 블랙리스트의 기초자료 수집을 도왔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