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포스코, '꿈의 기술' 수소환원제철 잰걸음…테스트 시설 가보니

by김은경 기자
2023.05.18 17:25:35

[철강, EU 탄소국경조정제 여파 최소화 안간힘]
포항 연구소 내에 ‘하이렉스’ 테스트 설비 구축
2030년 상용 기술 개발…2050년 탄소 ‘0’ 목표
수소 생산·조달 어려워…정부 인프라 지원 필요

[포항(경북)=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철강업계에서 ‘꿈의 기술’로 불리는 수소환원제철. 철광석과 화학 반응해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화석연료 대신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각국이 친환경 규제를 강화하고 탄소배출량을 따져 세금까지 매기겠다고 나서면서 고로를 운영하는 철강사들에 수소환원제철 기술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 문제가 됐다.

지난 17일 방문한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테스트 시설은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철강산업의 미래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했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소환원제철을 직접 실험해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실험 설비들은 경북 포항 포스코 기술연구원 동촌실험동 건물 안에 높이 약 10m, 가로 11m, 세로 5m 면적으로 들어서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 톤(t)의 쇳물을 쏟아내는 제철소 시설들은 규모 면에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이날 본 테스트 시설은 수소환원제철 데모(실증) 플랜트 전 단계에 해당한다.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비교적 규모는 작았지만, 설비나 기술 면에서는 당장 크기를 키워 대량 생산에 나서기에 손색없어 보였다.

포스코 경북 포항 기술연구원 동촌실험동 내에 구축된 수소환원제철 테스트 시설 전경.(영상=김은경 기자)
수소환원제철 공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물질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산소를 제거하는 ‘환원반응’과 고체를 액체로 만드는 ‘용융반응’이다. 이 과정을 고로가 아닌 ‘유동환원로’와 ‘전기용융로’라는 두 가지 설비에서 각각 진행한다. 먼저 유동환원로에서 철광석은 고온 가열한 수소와 만나 고체 철(Fe)이 된다. 이 방식으로 제조한 철을 직접환원철(DRI)이라고 부른다. 이 DRI를 전기로에 넣어 녹이면 1500도의 시뻘건 쇳물이 되는 것이다.

현재 포스코 테스트 시설에는 유동환원로만 구축된 상태다. 시설 오른쪽에는 고온고압 유동환원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은색 환원로에 철광석 2kg을 부어 넣으면 약 800도 고온의 수소가 외부 공급설비에서 땅속 배관을 타고 들어와 환원 작용을 시작한다. 천장에 반응량을 파악할 수 있는 연속 무게 측정 설비가 있어 실시간 반응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환원 작용을 통해 산소와 물 등이 빠져나가면, 최종적으로 약 1kg의 DRI가 아래로 쏟아져 나온다. 이때 나온 철은 입자가 더 작은 가루 형태여서 바람에 날려 손실될 우려가 있다. 이에 시설 오른쪽에 롤이 높은 압력으로 가루를 뭉쳐 조약돌 크기의 ‘핫 컴팩티드 아이언(HCI·Hot Compacted Iron)’으로 배출하는 설비가 위치해 있다. 쌀가루를 시루에 넣어 떡을 찌는 과정과 흡사하다.

포스코 수소환원제철 테스트 시설 유동환원로에서 철광석이 100% 수소를 만나 가루 형태의 고체 철인 직접환원철(DRI·오른쪽)로 탄생한 모습. 이를 압력기로 뭉치면 덩어리 형태인 왼쪽 모습(HCI·핫 컴팩티드 아이언)으로 변하게 된다.(사진=김은경 기자)
설비를 한 번 가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총 3일. 준비·가동·냉각에 각각 하루씩 소요된다. 고온 수소를 사용하는 탓에 설비 전체에 안전 규정에 따른 방폭 시스템을 구축했다. 포스코는 특허를 통해 이 설비 기술을 엄격하게 보호 중이다. 이미 실험 방법 자체도 특허를 냈다.



현재 포스코는 이 테스트 시설에서 수소환원제철 상용 설비 구축을 위한 설계 변수를 뽑아내고 있다. 포스코에서 13년째 관련 기술을 연구 중인 윤시경 저탄소제철연구소 수소환원연구그룹 수석연구원은 “이 정도 규모의 수소환원제철 테스트 시설을 갖춘 곳은 스웨덴과 오스트리아,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우리가 선두급 기술력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포스코의 목표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이다. 현재 포스코는 제철소에서 수소가 25% 포함된 환원가스를 사용하는 ‘파이넥스(FINEX)’ 설비를 가동 중이다. 파이넥스는 포스코가 2007년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기술로 현재 포항제철소 생산량의 약 20%를 담당하고 있다.

윤시경 포스코 저탄소제철연구소 수소환원연구그룹 수석연구원(왼쪽)이 지난 17일 경북 포항 기술연구원 동촌실험동 내에 구축된 수소환원제철 테스트 시설을 소개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포스코는 이 기술을 기반으로 2019년 포스코형 수소환원제철 모델인 ‘하이렉스(HyREX)’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2030년까지 실증 플랜트를 통해 상용 기술 개발을 완료한 뒤 2050년까지 포항·광양제철소의 기존 고로 설비를 단계적으로 수소환원제철로 전환해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구상이다.

수소환원제철 상용화에 가장 큰 걸림돌은 수소 생산과 조달이다. 윤 연구원은 “이산화탄소 배출 없는 철강 제품 생산을 위해 그린수소나 블루수소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인프라 구축이 미비한 상황”이라며 “수소를 대량으로 800도 이상 가열하는 기술도 아직은 안정성과 신뢰성을 더 확보해야 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포스코는 수소 인프라를 확보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선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하면 단가 상향이 불가피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져 정부의 관심과 세제 혜택 지원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윤 연구원은 “한국은 재생에너지 환경이 좋은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수소 제조단가가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며 “경쟁력 있는 탄소중립 전환을 위해 청정수소와 무탄소 전력 공급에 대해 기업과 국가 차원에서 사업 개발 및 사전 인프라 확충에 대해 계획 수립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시경 포스코 저탄소제철연구소 수소환원연구그룹 수석연구원이 지난 17일 경북 포항 기술연구원 동촌실험동 내에 구축된 철광석 유동층 실험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사진=김은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