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9천만원 배상 왜?.."학문의 자유보다 인격권 보호가 중요"

by이성기 기자
2016.01.14 14:23:34

'자발적 매춘' 등 허위 사실로 피해자 명예훼손
20일 명예훼손 첫 공판 예정..형사재판에도 영향

출처: 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학문의 자유 한계를 일탈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돼 원고(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불법 행위가 성립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한 책 ‘제국의 위안부’를 펴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박유하(59·사진) 세종대 교수에게 재판부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하며 밝힌 이유다. 서울동부지법 민사14부(부장 박창렬)가 지난 13일 이옥선(89)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9명이 박 교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1명당 1000만원씩 총 9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지난 2013년 8월 초판이 나온 ‘제국의 위안부’에서 박 교수는 그간 알려진 것과 다른 관점에서 위안부 문제를 서술해 논란에 휩싸였다. 박 교수는 책에서 “‘가라유키상(19세기 후반 해외 원정 성매매를 한 일본 여성들)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아편을)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라고 표현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강한 반발을 샀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일반 독자에게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본인의 선택에 따라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하는 매춘업에 종사한 사람이란 사실을 암시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인 매춘부인 ‘가라유키상’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는 만큼, 박 교수의 표현은 허위사실 적시에 해당된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위안부를 매춘부라 비난, 차별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었다’는 박 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명예훼손 여부는 주관적 의도가 아니라 표현의 객관적 의미, 객관적 평가의 의해 판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이들, 군인과 ‘동지’적 관계, 성(性) 제공은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 등 22개 표현에 대해서는 인격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애국·협력·동지와 같은 표현은 주관적 평가로서 의견 표명에 해당하지만 약간의 과장을 넘어 위안부가 피해자라는 사실 자체를 왜곡해 인격권을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사회 일각에서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학문의 자유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역사적 인물이 생존하고 있는 경우 인격권 보호의 정도가 학문의 자유에 대한 보호 보다 중시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일본군 위안부의 설치와 모집, 수송, 운영 등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사실은 유엔 인권소위원회의 각종 보고서와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 등에서 인정되고 있다”며 “위안부는 강제로 동원돼 ‘성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강요당하고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말살당한 피해자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이번 판결에 대해 “박 교수는 오히려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어불성설”이라며 “지금이라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시중에 있는 책을 폐기처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매춘부나 일본군의 협력자로 매도했다”며 2014년 6월 박 교수를 상대로 원고 1명당 3000만원씩 2억 7000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박 교수는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일본 우익 학자의 주장을 인용한 것으로 명예훼손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이런 점이 반영되지 않은 판결”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힌 상태다.

한편 이번 판결과는 별개로 검찰이 지난해 11월 박 교수를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해 오는 20일 첫 공판이 열린다. 이번 판결은 박 교수에 대한 형사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