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경기침체 우려에 '패닉셀'…변동성 휘몰아친 코스피
by김인경 기자
2024.08.05 18:00:44
코스피, 하루만에 234.64p 하락…1988년 개설 이후 최초
삼성전자 10% 급락…시총 2000조 무너져
코스닥도 11%↓…양 시장 모두 서킷브레이커
"방어주 비중 확대" 목소리 속 "반도체 실적 여전" 조언도
[이데일리 김인경 기자] 미국발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에 한국 증시가 앓아누웠다. 코스피 지수는 하루 만에 234.64포인트(8.77%) 내리며 1988년 개설 이후 가장 큰 낙폭을 나타냈고, 코스닥 지수도 11.30% 하락하며 700선마저 내줬다.
특히 외국인이 ‘패닉셀(공포심에 따른 급격한 매도)’에 나서며 투자자들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 확산에 안전자산 선호가 강화하며 외국인이 국내 증시에서 짐을 쌀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이날 코스피 시가총액이 196일 만에 2000조원 아래로 내려오고, 두 시장에서 모두 ‘서킷브레이커(CB)’가 발동했지만 증권가에서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경기침체 외에도 빅테크 부진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 등 다양한 요소가 증시 하락의 원인으로 손꼽히고 있어 당분간 변동성이 확대하리라는 전망이다.
증권가는 5일 코스피와 코스닥 시장의 급락 원인을 ‘복합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가장 크다. 특히 외국인들이 한국에 투자한 돈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충격이 커졌다. 외국인은 지난 2일 8479억원을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도한 데 이어 이날도 1조 5283억원을 팔아치우며 현금 비중 확대에 나섰다.
미국의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는 7월 구매자관리지수(PMI)와 실업률 등 경제 지표가 악화하며 확대하고 있다. 특히 실업률은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가파르게 치솟는 경향이 있어 월가는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의 실업률이 시장 예상을 웃돌자 미국의 고용시장과 경기가 급격하게 악화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증시가 큰 폭의 하락세를 나타내는 것을 시스템이 붕괴하는 악재 수준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에 따른 불안심리가 투매를 촉발했다는 해석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증시가 가파르게 하락한데다 고용지표가 망가지고 주말간 엔비디아발 반도체 악재가 나오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훼손됐다”면서도 “외국인 중심 매도세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데 리세션 우려가 배경이라면 머지않아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그간 국내 증시가 미국의 빅테크 영향을 받아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변동성이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그간 우리 증시를 주도한 종목이 대부분 미국의 경기에 영향을 받는 수출주이기 때문이다.
조병현 다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이미 지난주 발표된 제조업 PMI는 시장 예상치를 밑돌며 시장에 충격을 줬고, 최근 2년 정도를 보면 제조업과 서비스업 PMI가 비슷하게 움직이는 경향이 있어 불안감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미국발 변동성이 커진 만큼, 경기방어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상훈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비교적 방어적인 성격이 있는 종목이나 배당 매력이 있는 종목을 추천한다”며 “지수가 추가하락 하더라도 그나마 낙폭이 적을 수 있는 종목 위주로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유종우 한국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반도체와 2차전지보다는 방산이나 음식료, 유틸리티 등 방어력이 좋은 종목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 속 기준금리를 한번에 50bp(1bp=0.01%포인트) 인하하는 ‘빅컷’ 가능성이 커지는 점을 노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미래 기대가 큰 성장주가 강세를 보인다. 게다가 공포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뚜렷한 ‘숫자’인 실적이란 목소리도 나온다. 코스피 종목 중 절반이 넘는 56.9%가 시장 기대치 이상의 2분기 영업이익을 냈다. 이 가운데 주가가 급락하며 가격 매력이 생긴 종목들이 나오기 시작한 만큼, 이들을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경민 대신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실적 대비 저평가된 반도체와 자동차, 이제까지 소외됐던 2차전지와 인터넷주에 주목한다”면서 “이들이 코스피의 지지력을 형성하며 분위기 반전을 주도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방산, 에너지 전력, 조선 등을 중심으로 금리 인하 기대감이 반영될 헬스케어 등을 적절히 비중 있게 가져가야 한다는 기존 투자전략이 바뀔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응 업종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마저 엇갈리는 가운데, 확실한 것은 무리하게 추격 매도에 나설 필요는 없다는 점이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의 공포감이 클라이맥스를 넘어서는 구간”이라며 증시의 약세 역시 서서히 진정될 가능성이 큰 만큼 추격매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역시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며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됐다”면서 “현재 우려가 다소 과도하며 과매도 구간에 진입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