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도 예외 없다…불황에 수요 ‘뚝’

by김응열 기자
2022.12.29 16:48:37

1월~11월 가전제품 매출, 3년 만에 하락세 전환
글로벌 TV 출하 2억200만대 추정…10년 중 최저
“소비 반등 요인이 없다”…가전시장, 내년도 한파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TV가 진열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김응열 기자] 가전제품 시장의 한파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연말 쇼핑 대목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수요가 실종되자 가전기업들은 제품 재고가 쌓여 골머리를 앓고 있고 수익을 지켜낼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우려가 크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경기 불황이 이어지는 만큼 가전시장의 침체가 장기간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9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국내 가전제품 총 매출액은 약 28조235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액은 29조3749억원이었는데 이보다 3.8% 줄어든 수치다.

이 기간 가전제품 매출액이 감소세로 전환한 건 2019년 이후 3년 만이다. 2020년 1월~11월 매출은 26조8510억원으로 2019년 동기 대비 17.1% 상승했고 지난해에도 전년 동기보다 9.3% 늘었다.

대표적인 가전제품으로 꼽히는 TV만 해도 올해 글로벌 출하량이 감소할 전망이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올해 2억200만대의 TV가 출하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는 지난해 출하량 2억1000만대보다 3.8% 감소한 규모다.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해 가전시장 수요가 뚝 끊긴 데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 일상이 회복되면서 펜트업 효과(억눌린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 같은 코로나19 특수도 올해에는 사라진 데 따른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가전 수요가 충족이 된 상황인데 경기가 나빠져 소비가 얼어붙었다”며 “앞으로는 가전제품의 재고가 누적되는 국면이 형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블랙프라이데이 현수막이 걸린 서울 전자랜드 용산 본점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에는 연말 특수도 없었다. 중국 광군제와 미국 블랙프라이데이, 카타르 월드컵 등이 하반기에 몰리며 가전 수요가 살아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지만 소비자 지갑을 열기에는 부족했다는 게 업계 전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통 월드컵 시즌이 되면 TV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지만 올해는 평소보다 월드컵 효과가 적었다”며 “전쟁이나 공급망 혼란과 같은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 수요 침체가 장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전업체로선 가득 쌓인 재고도 부담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생활가전사업부가 포함된 DX(디바이스경험)부문이 지난 3분기말 기준으로 27조974억원의 재고자산을 기록했다. 지난해말 22조3784억원 대비 21% 증가했다. LG전자는 TV를 담당하는 HE사업본부의 경우 지난해말 1조7155억원에서 올해 3분기 2조1802억원으로 27% 뛰었다. 냉장고, 세탁기 등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 같은 기간 2% 늘었다.

재고를 제때 털어내지 못하면 제품의 상품성이 떨어져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진다. 판매촉진을 위해 추가비용이 투입될 가능성도 생긴다. 이는 가전기업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재고를 소진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 둔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미국의 고금리 기조가 내년 내내 유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민희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비 경기가 살아나려면 금리를 낮추고 경기 부양책이 동반돼야 하는데 단기 내 그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도 “불확실성이 많기 때문에 이번 불황은 L자형 불황(천천히 오래 지속되는 장기불황)의 양상을 띤다”며 “내년말까지 소비심리가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