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때문에 포토라인 서나 마나…범죄자 '머그샷' 요구 커지는 이유
by김대연 기자
2021.12.01 15:05:07
2020·2021년 신상공개 16건…마스크 탓 식별 한계
강윤성·김병찬 등 마스크 안 벗어…효과·취지 '무색'
국민 분노·불만 잇따라…"미국처럼 '머그샷' 도입 必"
"사회적 공론화 필요" vs "가족·지인 2차 피해 우려"
[이데일리 김대연 기자] 최근 전자발찌 훼손 및 연쇄살인, 신변보호 여성 스토킹 살해 등 강력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신상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마스크를 쓴 채 포토라인에 서서 신상공개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의자들이 자발적으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 이상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경찰이 이들의 맨얼굴을 강제로 공개할 수 없어 실물과 가까운 ‘머그샷’ 등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다.
| 강력범죄 피의자 김병찬(가장 왼쪽부터·35)·강윤성(56)·김영준(29)·백광석(48)이 신상공개가 결정된 이후에도 마스크를 벗지 않은 채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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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경찰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발발 이후인 지난해와 올해 피의자의 신상정보가 공개된 사건은 각각 9건과 7건(8명)으로 총 16건(17명)이다. 경찰은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등에 따라 △범행 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고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할 때 △피의자가 청소년보호법상 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때 등 4가지 요건을 갖추면 총 7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신상정보공개 심의위원회의 판단을 거쳐 피의자의 얼굴·성명·나이를 공개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방역지침 때문에 신상공개가 결정된 피의자라고 해도 검찰 송치 과정에서 스스로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면 이들의 맨얼굴을 보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신상공개가 결정된 △김태현(노원구 세 모녀 살인) △허민우(인천 노래주점 살인) △백광석·김시남(제주 중학생 살해) △최찬욱(남성 아동·청소년 70명 성 착취) △김영준(남성 1300명 성 착취물 유포) △강윤성(전자발찌 훼손 및 연쇄살인) △김병찬(신변보호 여성 스토킹 살해) 등 8명 중 얼굴 전체가 공개된 이는 김태현·허민우·최찬욱 3명뿐이다. 나머지는 “마스크를 잠시 벗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도 고개를 젓거나 침묵하는 등 거절하며 끝내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
특히 지난 9월 2일 신상공개가 결정된 강윤성은 지금의 모습과 현저히 다른 과거 신분증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밖에 제주에서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도 지난 2019년 6월 검찰 송치 과정에서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이용해 얼굴 노출을 피하는 이른바 ‘커튼 머리’로 국민의 공분을 샀다.
피의자의 과거 사진과 실물이 현저히 달라 신상공개의 범죄 예방 등 공익의 목적의 효과가 떨어지고 그 취지마저 무색한 ‘반쪽짜리 신상공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피의자의 의지에 따라 마스크를 벗는 우리나라에 미국처럼 ‘머그샷’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이 커지는 이유다.
| 2021년 신상공개가 결정된 강력범죄 피의자 김태현(25)·허민우(34)·최찬욱(26)이 마스크를 벗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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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샷은 범인을 식별하기 위해 구금 과정 등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을 의미한다. 피의자가 자신의 이름표나 수인번호를 들고 정면과 측면을 키 측정자 옆에서 촬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피의자의 인권 문제 등으로 머그샷을 도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공론화해 신상공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직장인 김모(30·남)씨는 “강윤성 증명사진과 현재 사진은 딴판”이라며 “길에서 마주쳐도 누군지 못 알아볼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주모(24·여)씨도 “당연히 신상공개가 결정됐는데 방역 때문에 마스크를 못 벗는 상황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나라 법이 너무 피의자 중심”이라며 머그샷 도입에 동의했다.
전문가들도 피해자보다 피의자 중심인 현행 법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신상공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공적인 사건들은 국가 수사기관에서 피의자를 가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의 자백뿐만 아니라 포렌식 등 물적 증거를 통해 유죄가 확실시될 때 신상공개가 되므로 조금 더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아 제도를 보완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피의자 신상공개는 주변인을 향한 2차 피해 우려도 발생할 수 있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범인을 검거하기 전에는 얼굴·인상착의 등 신상공개가 필요하다”면서도 “범인 검거 이후에는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정도일 뿐 공동체 이익이나 범죄예방 효과도 막연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