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 드러낸 노무라·CS…발빠른 골드만·모건스탠리 조기탈출

by김보겸 기자
2021.03.30 14:27:14

아케고스 사태에…미국계 웃고 非미국계 울고
신속히 출구전략 택한 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노무라·크레디트스위스 주가 10% 넘게 빠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아케고스 사태에서 먼저 발을 빼 손실을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사진=AFP)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김보겸 기자] 월가를 공포로 몰아넣은 아케고스 사태에 한때 연루됐었던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먼저 발을 빼 손실을 최소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아케고스에 돈을 빌려준 스위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CS)와 일본계 금융사 노무라는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한 탓에 손실을 피하지 못한 건 물론, 주가도 하락했다.

29일(현지시간) CNBC는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26일 골드만삭스가 아케고스 마진콜(추가 증거금 납부)과 관련한 주식 대부분을 팔아치워 손실을 면했다고 보도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바이두와 텐센트 뮤직 엔터테인먼트 등 중국 기업뿐 아니라 비아컴CBS와 디스커버리 등 미국 미디어기업 주식 약 150억달러어치를 팔면서 큰 손실을 피했다고 전했다.

반면 CS와 노무라는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주식 매각 대금이 아케고스에 빌려준 돈에 미치지 못하면서다. CS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손실은 이번달 말 마감하는 올해 1분기 실적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노무라도 전날 “미국 고객사와 거래 과정에서 일어난 사태로 20억달러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움직임은 IB 주가에도 반영됐다. 노무라는 29일 14% 급락하며 장을 마쳤고 CS도 11.5% 하락했다. 반면 모건스탠리는 2.6%, 골드만삭스는 0.5% 하락에 그쳤다.

업계에서는 노무라와 CS가 손실을 막을 만큼 충분히 빠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비(非)미국계 IB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CNBC는 전했다. 이들이 미국에서 소규모의 거래 영업만 하고 있는 만큼 정보 습등 등의 능력이 제한됐을 수 있다는 의미다.



마크 윌리엄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조사관은 “정보가 빠르게 흐르고 신속하게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서는 노무라의 위험 관리가 상당한 약점이 있음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빌 황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 대표. (출처=풀러재단)
앞서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는 골드만삭스 같은 초대형 IB로부터 돈을 빌려 원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대형 미디어와 중국 기술주 등에 투자했다. 하지만 빌 황의 의도와 달리 미중갈등이 확대 조짐을 보이며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중국 기업을 상장폐지할 가능성까지 내비치자 시장은 반대로 움직였다.

이에 원금 손실의 위험이 커진 IB들이 아케고스에 증거금을 추가로 내라며 마진콜을 요구했지만 유동성 압박에 직면한 아케고스가 그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IB들이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주식을 최근 주가보다 할인하는 블록딜을 통해 대형 투자자들에게 강제로 팔아넘겼다.

한편 빌 황은 2012년 내부자거래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합의금 6000만달러를 내고 풀려난 이후 월가에서는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하지만 골드만삭스 등 굴지의 IB들마저 연간 거액의 수수료를 안겨주는 빌 황을 블랙리스트에서 빼 대규모 차입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골드만삭스뿐 아니라 모건스탠리도 빌 황이 레버리지 베팅을 할 수 있도록 수십억달러의 자금을 지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