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횡령했다"는 박수홍 부친…친족상도례가 뭔가요?[궁즉답]

by한광범 기자
2022.10.05 14:43:34

가족 재산범죄 면제 규정한 친족상도례 논란 가중
형제는 동거해야 적용…박수홍 친형 적용 못 받아
"현대기준과 안맞아" 지적…국회서도 개정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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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했을 당시의 박수홍과 부친 박모씨. (사진=SBS ‘미운우리새끼’ 갈무리)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A.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는 친족 간 재산범죄에 대해 처벌을 면제해주는 특례조항입니다. 가족 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국가가 과도하게 간섭하지 않고 가족 내에서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는 아니고 기원은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나라에선 1953년 형법 제정 당시부터 명시돼 있었는데, 이는 유럽의 영향을 받은 일본 사법 시스템을 우리나라가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형법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와의 △권리행사방해 △절도 △사기·공갈 △횡령·배임 △장물 범죄 등에 대해 처벌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영향을 받은 일본의 경우 뒷부분 ‘또는 배우자’를 포함하고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형법 제정 당시부터 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는 배우자’의 해석을 두고 ‘동거가족의 배우자’에 한정할 것인지 아니면 ‘직계혈족의 배우자’, ‘동거친족의 배우자’도 포함되는지를 두고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결국 대법원은 2011년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에서 ‘배우자’의 범위를 ‘동거가족의 배우자’에 한정하지 않고, 직계혈족·동거친족의 배우자까지 포함된다고 판시해 이를 정리했습니다.

이에 따라 △부모나 자녀 및 그들의 배우자 △함께 사는 형제·자매나 친척(8촌 이내 혈족 및 4촌 이내 인척) 및 그들의 배우자와의 재산 범죄는 처벌이 불가능하게 됐습니다. 법 개정으로 1990년 친족 범위가 모계 및 여계 혈족과 인척으로 확대되며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은 더 넓어졌습니다.

방송인 박수홍 사건에서 부친이 나서 “내가 횡령했다”고 주장한 것도 친족상도례를 통해 형사처벌을 피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박수홍 부친의 경우 ‘직계혈족’으로서 처벌을 피할 수 있지만, 친형의 경우 범행 당시 함께 살지 않았다면 친족상도례 대상이 될 수 없어 처벌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친족상도례가 모든 법적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은 아니고 오직 형사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입니다. 처벌을 피해간다고 하더라도 민사적 책임은 질 수 있는 것이죠. 박수홍 사건에서 설령 부친이 실제 횡령 당사자로서 처벌을 피하더라도 박수홍이 민사소송을 통해 횡령액을 되찾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강제력이 동원되는 수사와 달리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어 긴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박수홍 사례에서 보듯이 가부장적 가정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친족상도례가 현대의 생활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가족 간의 재산 다툼이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친족상도례가 오히려 범죄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하며 개인의 권리를 크게 침해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도 “친족상도례는 가족을 무엇보다 중시하던 과거의 시각이 반영된 법안”이라며 “개인의 권리가 우선시되는 지금 시대와 맞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정부도 친족상도례 개선 필요성에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1992년엔 친족상도례를 폐지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정부가 낸 안을 보면 친족 범위를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으로 대폭 축소하도록 했습니다. 또 이들 친족에 대해 현재와 같은 무조건적으로 형이 면제되는 것이 아닌, 법관의 재량에 의해 형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혼란 야기’를 이유로 한 국회의 반대로 법 개정에 실패했습니다.

법무부를 중심으로 2009년 또 다시 친족상도례 개정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학계에선 근친에 대해서만 법관 재량에 따른 형면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제안했으나 역시 국회 벽에 가로 막혔습니다.

이처럼 꽉 막혀 있는 국회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친족상도례 개정 움직임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20대 국회에선 ‘후견인’인 가족을 친족상도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의 발의됐고, 21대 국회에서도 △노인 △아동 등에 대한 범죄를 친족상도례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아직 제대로 된 논의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6월 친족상도례 폐지법안을 대표발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 “가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그 형태 또한 다양해지면서 기존의 친족상도례 적용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며 “친족 범죄가 사회문제로 대두함에 따라 개선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1년째 잠자고 있습니다.

국회는 대신 장애인 가족을 상대로 한 수급비 횡령 등의 문제가 연이어 터지자 지난해 6월 장애인 가족을 대상으로 한 재산 범죄의 경우 친족상도례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조금씩 태도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국민적 요구가 더 거세지면 국회도 반응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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