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음향으로 듣는 클래식 음악, 어떻게 다를까요?[알쓸공소]

by장병호 기자
2024.10.25 13:00:00

서울시향, 말러 교향곡 1번 음원 들어보니
50개 마이크 이용해 자연스러운 울림 담아
잡음 제거하고 공간감 살리는데 주안점
"지휘자처럼 악단 가운데서 듣는 생생한 음악"

‘알쓸공소’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연 소식’의 줄임말입니다. 공연과 관련해 여러분이 그동안 알지 못했거나 잘못 알고 있는, 혹은 재밌는 소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가운데) 음악감독, 웨인 린(왼쪽) 부악장과 최진 톤마이스터가 23일 서울 중구 애플 명동에서 열린 투데이 앳 애플 세션에 참석했다. (사진=서울시향)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공간 음향’이라고 아시나요? 헤드폰이나 이어폰으로 듣는 소리가 실생활에서 듣는 것처럼 들리도록 하는 것을 뜻합니다. 일반적인 스테레오는 왼쪽과 오른쪽에서만 각기 다른 음악이나 소리를 들려준다면, 공간 음향은 듣는 사람을 둘러싸고 360도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뜬금없이 공간 음향 이야기를 꺼낸 것은 지난 23일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1번 음원 청음회를 다녀와서입니다.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은 지난해 11월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5년 임기 동안 말러 교향곡 전곡을 녹음하겠다고 밝혔고, 올해 1월 취임연주회에서 말러 교향곡 1번을 공연했습니다. 그 음원이 애플의 클래식 음악 전용 앱 ‘애플 뮤직 클래시컬’을 통해 공간 음향으로 독점 스트리밍되고 있습니다. 이날 청음회에 참여한 최진 톤마이스터(음반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를 총괄하는 역할)에게서 공간 음향의 특징과 녹음 과정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최진 톤마이스터는 클래식 음악을 공간 음향으로 담기 위한 주안점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간의 자연스러운 울림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음악을 들을 때 마치 오케스트라 연주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죠. 이를 위해 공간 음향 녹음에는 기존 녹음보다 더 많은 마이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이크는 각 악기의 특징을 잘 살리는 동시에 공간 전체의 분위기까지 담아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녹음에는 무려 50여 개의 마이크가 사용됐다고 합니다.

서울시향의 얍 판 츠베덴(가운데) 음악감독, 웨인 린(왼쪽) 부악장과 최진 톤마이스터가 23일 서울 중구 애플 명동에서 열린 투데이 앳 애플 세션에 참석했다. (사진=서울시향)
공간 음향으로 음원을 완성하는 과정 또한 기존 스테레오 녹음보다 더 많은 과정을 거칩니다. 이번 음원은 지난 1월 롯데콘서트홀에서 진행한 공연 실황 녹음에 4월 말과 5월 초 롯데콘서트홀에서 별도로 녹음한 세션을 함께 믹싱한 것인데요. 최진 톤마이스터는 “실황 녹음은 기침 소리 등 미세한 잡음이 들어가기 때문에 공간 음향을 위해선 잡음을 다 제거해야 한다”며 “스튜디오에서 적절한 밸런스로 잘 믹싱한 뒤 공간감을 구현하는데 주안점을 맞춰 작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주자들도 공간 음향으로 작업한 결과물을 들을 때는 반응이 다르다고 합니다. 최진 톤마이스터는 “믹싱 때 스튜디오를 찾아오는 연주자들이 스테레오 스피커로 음악을 들을 때는 ‘좋다’, ‘믹싱이 잘 됐다’ 정도의 의견만 준다면 공간 음향 작업을 들을 때는 ‘소름이 돋는다’, ‘소리가 앞에 있는 느낌이다’라며 놀란다”며 “실제 공연을 관람한 것처럼 스튜디오에서 박수가 나올 때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시향이 이번에 공개한 말러 교향곡 1번은 4악장 구성에 연주 시간만 1시간에 달하는 대곡입니다. 최진 톤마이스터는 이번 음원에서 공간 음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추천했는데요. 1악장 12분부터 약 3분 정도의 구간, 그리고 2악장 시작부터 4분, 3악장 시작부터 4분 등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역동적인 연주를 담고 있어 공간 음향으로 들으면 그 효과가 더 잘 느껴진다고 합니다.

츠베덴 음악감독도 이번 음원에 만족했습니다. 츠베덴 음악감독은 “말러 교향곡 1번에서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부분은 이른 새벽 자연이 깨어나는 모습을 묘사한 오프닝으로 작곡가 내면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라고 소개하며 “공간 음향이라는 기술을 통해 청취자들은 오케스트라의 정중앙에 서 있는 지휘자가 되어 음악을 듣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서울시향과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녹음한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앨범 커버. (사진=서울시향)
공간 음향으로 음악을 몇 번 들어보긴 했는데 그때마다 스테레오 음원과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최진 톤마이스터의 설명을 들은 뒤 이번 음원을 감상하니 스테레오가 평면적인 느낌이라면 공간 음향은 조금 더 입체적이고 풍성한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극적인 변화까지 느껴지진 않았는데요. 최진 톤마이스터는 “공간 음향을 제대로 듣기 위해선 10대 이상의 스피커가 필요하며,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는 공간 음향은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구현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아직 공간 음향으로 녹음한 음원이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는 공간 음향으로 녹음하는 것이 추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시향은 이번 말러 교향곡 1번을 시작으로 츠베덴 음악감독과 말러 교향곡 전곡 사이클 녹음에 들어갑니다. 얼마 전 2025년 시즌 프로그램을 공개했는데요. 내년 1월에는 말러 교향곡 2번, 2월에는 말러 교향곡 7번 공연과 함께 녹음이 예정돼 있습니다. 서울시향에 따르면 이들 음원도 애플 뮤직 클래시컬을 통해 공간 음향으로 독점 공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