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드러나 재산 0원 된 '여자 잡스', 천억원대 초호화 주택에 산다

by김보겸 기자
2021.09.08 15:38:44

사기 혐의로 재판 앞둔 엘리자베스 홈스
실리콘밸리 부촌 주택서 호화생활 중
사기로 드러난 "피 한방울로 암 진단"

지난 2014년 테라노스 창업자 엘리자베스 홈스(왼쪽)가 테크크런치에 참석한 모습(사진=AFP)
[이데일리 김보겸 기자] ‘제2의 스티브 잡스’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 엘리자베스 홈스 테라노스 창업자가 초호화 저택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7일(현지시간) CNBC는 홈스가 미국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그린게이블스의 초호화 지역 우드사이드의 고급 저택에 머물고 있다고 보도했다.

홈스의 거주지는 그의 배우자가 교통위반 딱지를 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캘리포니아주 당국은 홈스가 임신을 이유로 재판을 연기받은 지난 3월17일 그의 배우자 윌리엄 에반스에게 번호판을 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칙금을 부과했다. 범칙금 고지서에는 홈스 부부의 주거지가 적혀 있었다.

홈스는 테라노스 기술을 과장한 사기 혐의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사진=AFP)
홈스가 사는 곳은 안 그래도 땅값이 비싼 실리콘밸리에서도 특히 비싼 곳으로 평가받는 주택단지인 그린게이블스 내에 있다. 이 곳의 부지는 약 9만500평(74에이커)으로 경기장 크기의 로마식 풀장과 테니스 코트, 꽃밭 및 수영장이 다수 들어서 있다. 그린게이블스 내 주택들은 약 1억3500만달러(약 1570억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왕족과 정치인, 실리콘밸리 엘리트들이 이 곳에 거주하며 유엔(UN) 20주년 기념행사도 이곳에서 치러졌다.

거주자 중에는 홈스의 테라노스에 투자한 오라클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도 있다. 이외에도 인텔 공동 창업자 고든 무어와 벤처투자자 존 도어, 찰스 슈왑 등 실리콘밸리 거물들도 이곳 주민이다.

사기 행각이 드러난 이후에도 홈스가 초호화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의혹은 이전부터 제기됐다. 지난 2019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모습이 여러 번 목격되는가 하면, 월세 5300달러(약 616만원)의 고급 아파트에 머물렀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지난 2015년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참석한 홈스와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사진=AFP)
홈스는 한때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 중 1명으로 선정된 인물이다. 명문대를 중퇴하고 질병 진단 키트를 개발하는 회사를 설립해 ‘제2의 스티브 잡스’에 비견되기도 했다. 그는 스탠포드대학교 화학공학과에 2학년으로 재학 중인 2003년, 19세의 나이로 대학을 중퇴하고 테라노스를 설립했다. 치료(Therapy)와 진단(Diagnosis)를 합친 말로, 전통적인 혈액검사에서 벗어나 저렴하고 효율적인 대안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2012에는 손가락 끝을 찔러 얻은 피 한 방울로 암이나 당뇨 등 260여개의 병을 진단하는 ‘에디슨 키트’를 발표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2014년 포브스는 테라노스 지분의 절반가량을 소유한 홈스의 재산이 45억달러에 달한다며 그를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테라노스의 사기행각은 이내 덜미를 잡혔다. 언론을 통해 공개한 기술이 너무 모호하고 고등학교 과학 수업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에 의문을 가진 월스트리트저널(WSJ) 탐사보도 전문기자 존 캐리루가 테라노스 전현직 직원 160명을 인터뷰해 테라노스 기술이 과장됐다는 점을 밝히면서다. 테라노스는 240여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광고했지만 실제로 가능한 건 10여가지에 불과했다.

2016년 포브스는 홈스의 순자산을 0달러로 수정했다. 90억달러에 달하던 테라노스 평가액도 8억달러로 낮췄다.

홈스는 무혐의를 주장하고 있다. 테라노스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전 남자친구 라메시 발와니가 모든 일을 주도했고 자신은 얼굴마담 역할만 했다는 것이다. 또 그가 10년간 자신을 정신적, 성적으로 학대했다고도 주장했다. 테라노스 기술력을 과장한 데 대해서는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실리콘밸리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홈스는 사기 혐의로 최대 20년 징역형을 받을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의료 사업에서 사기 행각을 일삼은 데다가 범죄를 입증할 증거가 많은 탓이다. 일각에선 테라노스 사기 사건을 계기로 남을 속이고 훔쳐서라도 성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실리콘밸리 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촉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