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특검 출석…“국민께 송구하다”(종합)

by이재호 기자
2017.01.12 11:06:40

삼성 비자금 특검 이후 두번째
여유로운 표정으로 조사실 향해
뇌물죄 혐의 피의자 신분 조사
2008년 무혐의, 이번엔 쉽지않아

12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 (사진=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이재호 기자]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61)씨가 설립을 주도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출연하고 최씨에게 수십억원의 자금 지원을 한 대가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국민연금의 찬성을 이끌어낸 뇌물공여 혐의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이후 두번째로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 조사를 받게 됐다. 당시 배임죄가 무혐의로 결론난 데 이어 이번 뇌물죄 혐의는 어떤 식으로 귀결될 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12일 오전 9시28분께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도착했다. 취재진에 둘러싸인 이 부회장은 “이번 일로 국민들에게 좋은 모습을 못 보여드려 송구하고 죄송하다”고 말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조사실로 향했다.

최씨에 대한 지원을 직접 지시했는지,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는지,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삼성 경영권 승계에 활용했다는 혐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질문을 쏟아졌지만 이 부회장은 더이상의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삼성은 미르·K스포츠 재단에 204억원을 출연하고 최씨가 지난 2015년 8월 독일에 설립한 스포츠 마케팅 업체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에 78억원을 송금했다. 특검은 이 자금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데 대한 대가로 판단하고 이 부회장을 소환했다.

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특검은 이 부회장과 지난 9일 조사를 받았던 최지성(66) 삼성 미래전략실 부회장과 장충기(63) 미래전략실 사장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라 최씨와 박 대통령에 대한 뇌물죄 수사도 급물살을 탈 수 있다.

이날 특검 조사에 임하는 이 부회장의 태도는 9년 전과 유사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 상무로 재직하던 2008년 2월 28일 삼성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조준웅 특검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서서 “삼성에 대해 많은 걱정과 기대를 하고 있다는 점을 안다”며 “성실하게 답변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날도 이 부회장은 살짝 미소를 짓는 등 여유를 잃지 않았다.

2008년 이 부회장에 제기된 의혹은 e삼성 부당지원,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인수 등 배임 혐의였는데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론이 났다. 하지만 이번 박영수 특검팀은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삼성이 박 대통령은 물론 최씨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 자금의 전달 경로와 용처 등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축적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일 특검이 최씨 조카인 장시호씨로부터 확보한 최씨 소유의 태블릿PC가 ‘스모킹건(사건 해결을 위한 결정적 증거)’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규철 특검보는 “직접 뇌물죄가 될지 제3자 뇌물죄가 될지는 조사를 해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조사 이후 사법처리 여부도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조사는 이날 자정을 넘길 공산이 크다. 조사 도중에 긴급체포 등 신병처리에 나설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에 앞서 특검 조사를 받은 최 부회장과 장 사장은 이날 정상적으로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 이 부회장 부재에 따른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다. 내부 동요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그룹 총수가 특검에 불려나간 상황은 삼성 조직 구성원 입장에서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다. 삼성 관계자는 “내부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며 “이 부회장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특검에 소환된 것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