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대웅 기자
2017.12.26 17:20:10
코스닥→암호화폐 자금이동 속도
테마주 하루 거래대금 수천억 기록하기도
"비트코인 시세가 최근 시황의 한 축"
[이데일리 김대웅 기자] “어차피 주식투자도 단기 시세차익을 노리고 하던 거였는데 요즘 분위기에서는 암호화폐가 훨씬 낫죠. 그래서 최근에 암호화폐 쪽으로 비중을 대폭 늘렸습니다.”
코스닥 위주로 주식투자를 10년 가까이 해온 30대 A씨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절반 이상 팔아 암호화폐 계좌에 밀어 넣었다. 비트코인 선물거래가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이뤄지고 암호화폐로 실물 결제가 되는 곳도 많다는 소식을 접하며 쉽게 꺼질 거품이 아닐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다.
최근 암호화폐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A씨처럼 주식에서 돈을 빼 암호화폐로 갈아타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아직 정확한 데이터가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코스닥 시장에서 개인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매도에 나서고 있는 반면 암호화폐 거래 규모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등 자금 이동이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주요 암호화폐들의 시세는 이른바 `코리아 프리미엄`이 붙을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주요 암호화폐들은 달러화로 거래되는 해외 거래소보다 원화로 거래되는 국내 거래소에서 30% 가량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이달 들어 빗썸 업비트 코빗 등 주요 거래소의 하루 거래대금은 10조원대를 넘나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코스닥 시장의 하루 거래대금은 지난달 7조~10조원 수준에 이르다가 이달 들어 6조원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증시 내에서도 암호화폐는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암호화폐 관련 테마주만 수십개가 형성되며 무더기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이들 종목들은 각 종목당 많게는 하루 수천억원씩 거래되며 삼성전자 등 코스피 내 대형주 거래대금을 웃도는 경우도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최대 변수로 떠오른 셈이다.
대장주로 꼽히는 SCI평가정보는 지난달 1000원대에 머물던 주가가 이달 들어 8900원까지 치솟는 등 폭발적인 시세를 분출하고 있다. 특히 시세 변동성 확대와 함께 막대한 거래량을 동반하고 있어 코스닥 시장의 투기성 자금이 암호화폐 테마주들로 대거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암호화폐의 자금 흡입력은 비단 주식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불리던 금값 역시 암호화폐 광풍이 불기 시작하면서 지속적인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10일 비트코인 선물거래 시작과 함께 국제 금값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해 지난 8일 온스당 1245.2달러였던 금값이 12일 1238.5달러까지 떨어졌다. 국내 금값도 지속적인 하락세다. 물론 금 가격은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 최근 미국 기준금리 인상을 반영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투자 열풍이 금 투자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온다. ACG애널리틱스는 “그동안 채권 가격과 높은 연관성을 보이던 금값이 최근 비트코인 가격을 따라 움직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코넥스와 K-OTC(장외주식시장)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암호화폐 시장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각종 혜택을 주며 코넥스와 K-OTC 시장 활성화를 지원하는데도 시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은 암호화폐 열기가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투자 열풍은 금융투자 업계의 인력들도 급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가 금융과 핀테크 전문 인력들을 무서운 속도로 영입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4곳이 올 들어 신규 채용한 직원이 500여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한국거래소나 증권사 등의 직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올해 초 직원 수가 20여명에 불과했던 빗썸은 임직원 수가 200여명으로 늘었고 현재 대규모 인력을 추가로 모집하고 있다. 업비트는 100여명의 신규 인력을 충원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증시 시황을 분석할 때 암호화폐 시세도 함께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암호화폐 광풍이 꺼져야 주식시장, 특히 코스닥의 수급 정상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