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롭힘 끝 투신까지 내몬 초등생 학폭…6년 후 손해배상
by권효중 기자
2023.03.13 16:32:57
2017년 11월 성동구 초등학교 6학년생, 괴롭힘 끝 투신
목숨 건졌지만 후유장애…손배소 제기
“가해자 3명 부모, 1.7억 지급해야”
후유증 상당해도…시간 걸려 ‘민사’ 거쳐야 배상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최근 ‘정순신 사태’와 드라마 ‘더 글로리’ 등으로 학교폭력 문제가 재점화한 가운데, 초등학교 동급생을 괴롭혀 극단적 선택 시도까지 몰아간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에 손해배상을 하란 민사소송 판결이 사건 발생 6년 뒤 이뤄졌다. 피해자가 손해를 입증해 위자료 등을 받으려면 ‘철저한 준비’를 통한 민사를 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이 소요돼 피해자 고통이 가중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동부지법 민사13부는 학교폭력 피해자인 A군 측이 제기한 3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과 관련, 가해자 3명의 부모들에 1억6753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달 9일 판결했다. A군의 후유장애, 노동능력 상실 등을 종합해 판단한 결과로, 사건 발생일부터 재판이 이뤄진 날까지 연 5% 이자를 매겨 실제론 2억여원을 배상토록 했다. 지급이 늦을 경우엔 다 갚는 날까지 연 12% 이자를 매기도록 했다.
사건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서울 성동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생이었던 A군은 4월부터 같은 학년 남학생 3명으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 이들은 A군의 장난감을 뺏어 망가뜨리고, 반복적으로 별명을 부르며 놀리거나 머리를 때렸다. 같은 해 9월 수학여행에선 A군이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행위도 이뤄졌다.
괴롭힘 끝에 A군은 같은 해 11월 19일 유서를 작성하고 자신이 거주하던 아파트에서 투신했지만, 나뭇가지 등에 걸려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A군의 투신 한 달여 후 학교에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를 열어 가해자 B군에게는 전학 조치를, C군과 D군에게는 각각 출석정지 10일 조치를 내렸다. 성동경찰서 역시 가해자들을 송치했으나, 이들이 만 14세 미만 촉법소년인 만큼 서울가정법원으로 보내져 소년보호처분을 받게 됐다.
소년보호처분과는 별도로 지난해 A군의 부모는 가해자 3명과 이들의 법적 보호자인 부모 6명을 대상으로 재산상 손해에 위자료를 포함, 3억6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학교폭력 사건 종료 후에도 치료비에 1500만원을 쓰는 등 후유증이 상당했던 탓이다. 내년이면 성년이 되는 A군은 노동능력 상실률이 19%로, 평범한 이에 비하면 노동능력이 80% 수준에 불과한 걸로 파악됐다.
그러나 가해자 측 부모들은 A군의 투신엔 학교폭력뿐만이 아닌 A군의 학업 스트레스, 학폭위가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며 맞섰다. 여기에 형사합의금 8000만원을 이미 줬다고도 했다.
법원은 A군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학급 내 또는 수학여행 기간 중 괴롭힘은 A군에게 상당한 고통을 주었을 것”이라며 “(투신 등) 결국 모든 일의 계기는 가해 행위이고, 학폭위가 열리지 않으면 가해 행위가 지속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투신에 일조했다고 보인다”고 했다. 다만 “당시 만 11~12세 피고 학생들에겐 책임 능력이 없었다”며 “가해자들의 부모는 미성년자인 자녀를 제대로 보호·감독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가해자 부모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만 받아들였다.
전수민 변호사는 “이 사건처럼 학교폭력 가해자가 가정법원에서 소년보호처분을 받더라도 위자료 등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민사소송 절차를 밟는 수밖에 없고, 사례도 꽤 많다”고 했다. 노윤호 변호사는 “민사소송에서도 정신적 피해 등 위자료 산정에 조정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며 “가해자 측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사실조회신청까지 넣으면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기 때문에 시일이 걸리고, 이 과정에서 피해를 증명해야 하는 피해자 고통이 가중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