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철폐' 투투 대주교 선종… 전세계 애도 물결

by고준혁 기자
2021.12.27 16:15:06

향년 90세…전립선 암 선고 뒤 20년 투병 생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
이후 '용서 없이 미래 없다'며 국민 통합에도 힘 써
오바마 "고인, 인류애 찾으려는 의지와 유머 잃지 않아"

[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넬슨 만델라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운 데즈먼트 투투 성공회 명예 대주교가 26일(현지시간) 향년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데즈먼트 투투 성공회 명예 대주교. (사진=로이터)
이날 파이낸셜타임즈에 따르면 투투 대주교의 선종 소식에 시랄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애국자이자 아파르트헤이트와 맞선 지성인이었으며 억압, 불공정, 폭력으로 고통받는 이들에 연민을 가진 인물이었다”며 투투 명예 대주교를 애도했다. 만델라 재단도 성명을 내고 “그의 삶은 남아공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 축복이었다”고 전했다.

투투 대주교는 1997년 전립선암을 진단받은 뒤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했다. 요양병원에 머물렀던 그는 이날 가족 곁에서 숨을 거뒀다. 2010년 은퇴한 뒤 좀처럼 공개 발언을 하지 않았고, 2015년부턴 그의 입원 소식이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고인은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공로로 1984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1994년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평화적인 흑백 정권 교체를 이룬 후에도 여러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는 ‘무지개 국가’를 건설하자며 국민 통합에 힘썼다.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3년 프레데리크 빌렘 데클레르크 전 대통령과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바 있다. 두 대통령은 각각 2013년, 지난달 11일 세상을 떠났다.

투투 명예 대주교는 1931년 요하네스버그 인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교사로 재직했던 1953년 당시 백인 정권이 흑인과 백인의 교육 체계를 분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이에 반대하며 사직했다. 1960년 성공회 성직자가 된 뒤 남아공과 영국을 오가며 생활하다 1975년 귀국한 후 인종차별 철폐 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끝난 뒤에도 ‘용서 없이 미래 없다’는 구호를 앞세우며 국민 통합에 힘쓴 공로가 높게 평가된다. 로이터 통신은 “거침 없었던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에서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국가의 양심’, ‘화해의 정신’으로 평가받는다”라고 전했다.

고인은 또한 부정부패와 소수자혐오 등에도 끊임없이 맞서 싸웠다. 부패가 심했던 제이콥 주마 정부(2009~2018년)를 거세게 비판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종식한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정실 인사와 순혈주의도 문제 삼았다.

전 세계 유명인사들도 고인을 애도했다.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 전 대통령은 “투투 대주교는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의 멘토이자 친구이며 ‘도덕의 잣대’였다”고 말했다. 이어 “성명에서 투투 대주교는 적들 가운데서도 인류애를 찾으려는 의지와 유머를 잃지 않았다”며 “미셸과 함께 그를 많이 그리워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투투 대주교가 남아공에서 인종 간 평등과 화해를 이뤄내 복음에 헌신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미국의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딸인 버니스 킹 목사는 “현인이자 인권 지도자이며 강력한 순례자가 세상을 떠났단 소식을 듣고 슬픔에 빠졌다”며 “그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더 발전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