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할머니 "文대통령 임기 끝나가는데 위안부 문제 해결 진전 없어"

by정다슬 기자
2021.10.26 15:18:29

한일정부 합의 필요한 ICJ회부와 달리
고문방지위원회(CAT) 단독 회부 가능
CAT 협약 위반 판단시 ICJ 회부할 수 있어
"중요한 것은 韓정부 의지"…외교부 "신중 검토"

26일 오후 대구 중구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 유엔고문방지협약(CAT) 해결 절차 한국 단독회부를 촉구하는 온라인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문재인 대통령님, 제 손을 잡고 고문방지위원회에 갑시다. 제가 숨이 붙어있을 때 갑시다. 꼭 들어주세요, 눈물로 호소합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대답해주세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한일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 고문방지위원회(CAT)에 따른 해결절차를 밟을 것을 촉구했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간 해결방안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 단독으로 가능한 CAT 회부를 통해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자는 주장이다.

이 할머니는 26일 대구 희움일본군위안부 역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이 할머니는 “올해 2월 위안부 문제 해결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 ICJ에 위안부 문제를 회부해달라고 대통령께 요청드렸지만, 11월이 돼 가도록 청와대도, 외교부도, 여성가족부도, 인권위원회도, 국회도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피해자 중심주의 해결을 강조했지만, 올해 초에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2015년 졸속합의를 국가간 합의로 인정하셨다고 한다”며 “마음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가고 싶지만, 일본 때문에 ICJ에 못 간다면 일본의 동의가 없어도 해결할 방법을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와 일본군위안부문제ICJ회부추진위원회가 이날 제시한 방안은 CAT를 통한 해결절차다. CAT는 고문과 학대 행위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엔 고문방지협약의 이행 감독기관으로 한일 모두 가입돼 있다.

앞서 이 할머니는 ICJ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을 따져보자고 주장한 바 있다.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2015년 위안부 합의로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과 이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면한 것으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이 한치도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방안이다. 이후 이 할머니와 추진위는 정의용 외교부 장관을 만나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에게도 서한을 보내 ICJ 회부를 촉구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한국 정부 역시 ICJ 회부에 따른 파장과 한일 관계 등을 고려해 미온적인 입장이다. 애초에 ICJ는 양국 정부가 모두 재판에 응해야 하겠다고 시작돼야 하는 만큼, 일본 정부가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이상, 우리 정부의 독자적 의지만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반면 CAT의 국가간 통보에 따른 조정절차는 한국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다. 신희석 박사는 “한국은 2007년, 일본은 1999년 유엔 고문방지협약 제21조 제1항에 따라 CAT가 당사국 사이에 협약에 따른 의무 불이행에 대한 통보를 심리할 권능 인정 선언을 했다”며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도 CAT의 국가간 통보에 따른 조정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고문방지협약을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서면 통보하면 일본은 통보 접수 3개월 내에 우리 정부에 관련 문제를 설명하는 설명서나 그 밖의 해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최초 통보 접수 후 6개월 내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 우리 정부는 협약 위반을 CAT에 회부할 수 있다. CAT는 이때는 모든 국내적 구제조치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시도돼 완료됐다는 전제하에 안건을 심의한다.

CAT의 중재로 두 당사국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결과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더라도 CAT가 위안부 문제가 협약 위반이라고 판단할 경우, 한국은 협약 위반으로 일본 정부의 동의 없이 ICJ에 회부할 수 있다. 협약 제30조 제1항은 당사국간 협약의 해석·적용 관련 분쟁이 발생하면 중재 회부, ICJ 회부를 통한 분쟁 해결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 박사는 “CAT는 과거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제출한 고문방지협약의 이행에 관련된 정기보고서를 심사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권고를 내린 바 있다”며 “위안부 피해가 고문에 해당한다는 것을 CAT가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소급적용 여부 등에 대해서도 신 박사는 “2000년대 이후에서는 협약 발효 이전에 있었던 행위에 대해서도 피해자 배상이라든가 가해자 처벌 의무를 확인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법적 다툼이 가능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정 배상과교육을위한위안부행동(CARE) 대표는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이날 이 할머니와 추진위의 입장에 대해 정부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안은주 외교부 부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CAT를 통한 해결은 신중히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현재 생존하고 계신 할머니는 13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