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式 고율관세 부과시 중국 中企 수천곳 파산"

by방성훈 기자
2017.03.20 13:26:55

"임금상승·마진하락 등에 고전..고율관세까지 감당 못해"
관세 45% 부과시 對美 수출 87% 감소 전망도
TPP 탈퇴한 美 때문에 동남아 생산기지 이전도 불투명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중국인 사업가 에릭 리(Eric Li)씨는 중국 남동부에 4개의 유리 공장을 갖고 있다. 이 곳에서 생산된 램프갓과 화병은 미국에 수출된다. 미국 홈디포 매장에는 여전히 램프갓이 진열돼 있지만 그의 공장 4곳 중 3곳은 이미 가동을 멈췄다. 직원들의 월급이 9년 전보다 3배 증가한 반면 마진은 10분의 1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10년 전 1000명에 달했던 직원은 이제 150명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에 엄격한 규제까지 더해져 회사는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리씨는 “트럼프 행정부가 고율 관세마저 부과한다면 우리는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 게임 끝”이라고 토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 내 수천개의 중소기업이 파산할 것이라고 블룸버그통신이 20일(현지시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기간 중국산 제품에 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도 지난 1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중국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도에 따르면 중국에는 리씨의 공장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곳이 수천개에 달한다. 주로 의류, 장난감 및 생활용품 제조사들이다. 이들 품목의 대미(對美) 수출액은 4628억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공장주들은 미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사업을 접거나 매각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현금이 풍부하지 않아서 관세 환급을 받거나 동남아시아로 사업을 전환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또 대만이나 동남아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해도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탈퇴, 불투명한 미래에 투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맥킨지 상하이 사무소의 수석 파트너인 캐럴 엘루트는 “중국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는 달리 사업을 다각화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미국 수입 관세에 변화가 일어나면 가장 많이 노출되고 영향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중국 내 중소기업들은 임금 상승, 사회보험보장 및 환경보호법 강화 등으로 이미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중국의 2월 생산자물가는 7.8% 상승해 2008년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스티브 마우러 중국 사무소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중국 내 제조비용이 미국의 85%까지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세계적인 장난감 업체 하스브로에 납품하는 룽청그룹도 대부분의 생산라인을 인도네시아로 이전했다. 매출의 70%가 미국에서 발생하는데 중국 내 비용 상승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이 그룹의 회장은 “10%의 관세 인상으로도 중국 공장이 비용을 충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중국을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좋은 가격에 공장을 팔고 사업을 접는 게 좋을 것”이라고 밝혔다.

케빈 라이 다이와캐피털마켓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수입 관세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약대로 45%가 책정되면 중국의 대미 수출이 87% 급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민간 중소기업들은 올해 1~2월 전체 대미 수출의 45%를 차지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에 대응할 수 있는 업체들은 애플과 나이키에 각각 납품을 하고 있는 대만 홍하이나 유유엔 정도가 꼽힌다. 중국 역시 보잉 항공기, 아이폰 등 미국 기업들에게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다. 또 중국에서 사업하는 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세금이나 반독점법 위반과 관련해 조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홍콩중화창상연합회(CMA) 에디 리 회장은 “무역전쟁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 걸림돌이 된다”며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