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은 패터슨"…20년만에 한 씻은 이태원살인사건 유족

by한광범 기자
2017.01.25 11:34:26

대법원, 살인혐의 패터슨 징역 20년 확정 판결
1997년 4월 발생 후 진범 확정 판결가지 20년 걸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 후 검찰 재수사 속도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상고를 기각한다.”

이태원 살인 사건의 피해자 조중필(당시 22세)씨의 가족의 한이 20년 만에 씻기는 순간이었다. 조씨 살인 혐의로 기소된 아더 존 패터슨(38)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상고를 대법원이 기각하며 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5일 오전 살인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패터슨은 1997년 4월 3일 서울 이태원의 한 햄버거 가게 화장실에서 당시 대학생이던 조씨를 수차례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이 사건은 수사기관의 잘못된 대처로 진범을 단죄하기까지 무려 2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검찰은 사건 직후 범행 장소에 패터슨과 함께 있던 한국계 미국인 에드워드 리(38)를 진범으로 지목하고 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당시 패터슨에겐 증거인멸과 흉기소지 혐의만 적용했다. 미8군 범죄수사대가 패터슨을 진범으로 지목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정이었다.

1심과 2심은 리의 살인 혐의를 인정했으나 대법원은 1998년 4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결국 리는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패터슨은 유죄를 선고받고 복역하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리에 대한 대법원 판결 후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패터슨에 대한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그는 이 같은 허점을 이용해 1999년 8월 유유히 미국으로 돌아갔다.

흐지부지되던 사건은 지난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 개봉으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재수사에 나선 검찰은 패터슨을 진범으로 보고 그에 대한 인도를 요청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로 패터슨을 기소한 이후 그는 미국에서 수사 당국에 검거됐다. 그리고 2012년 미국 연방법원은 패터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 하지만 패터슨의 항고로 송환은 미뤄졌고 그는 마침내 2015년 9월 23일 한국에 송환됐다. 그는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살인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내가 여기에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충격”이라며 혐의를 강력 부인했다.

1심과 2심 모두 패터슨을 진범으로 보고 무기징역형을 선택했다. 하지만 범행 당시 18세 미만 소년이었던 점을 감안해 특정강력범죄 처벌 특례법에 따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패터슨은 2심 재판 최후 진술에서도 자신이 희생양이 됐다며 끝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리에 대해서도 공모 혐의를 인정했지만 일사부재리 원칙상 처벌할 수 없었다.

조씨 유족들은 선고 직후 “한을 풀었다”고 밝혔다. 조씨 어머니 이복수씨는 취재진과 만나 “진짜 마음이 홀가분하다”며 “하늘에 있는 우리 중필이도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그는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망갔을 땐 눈이 캄캄했다. 아무리 검찰에 탄원서를 내도 소재 파악 중이라는 답변만 왔다”며 “영화(이태원 살인사건)를 보고 언론이 떠들고 하니까 이렇게 20년 후에 이런 판결이 났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특히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을 연출한 홍기선 감독과 재수사를 주도한 박철완 부장검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조씨 아버지 조송전씨도 눈시울을 붉히며 “범인이 그 사람이라니까 나도 그런줄 알고 묻어버리려고 한다”며 “(아들도) 제 갈길을 갔을 것”이라며 소감을 전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 씨가 2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상고심을 마치고 나와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