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재검토위원장 사퇴 “판 다시 짜야”…산업부 “계속 추진”

by김형욱 기자
2020.06.26 16:36:56

정정화 위원장 26일 사퇴 기자회견…공론화 난항 예고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26일 서울 달개비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실패했다. 탈핵시민계를 포함한 이해당사자가 포괄적으로 참여하는 논의 구조로 판을 다시 짜야 한다.”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이하 재검토위) 위원장이 26일 서울 한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사퇴 의사를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재검토위 운영 규정에 따라 나머지 위원 중 호선을 통해 새 위원장을 선출해 공론화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지만 정 위원장의 사퇴로 당분간 어려움이 예상된다.

산업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지난해 5월 10여 명의 중립적 전문가로 이뤄진 재검토위를 구성하고 대국민 의견수렴 절차를 추진해 왔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4기의 원자력발전소(원전)가 가동 중이며 차례로 수명이 다해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다 쓴 핵연료 처리 방법은 아직 미해결 상태다. 지금까진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해 왔는데 이마저도 곧 포화한다.

앞선 박근혜 정부는 이미 2016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이를 추진키로 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앞선 의사결정이 원전 지역 주민, 시민사회 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반영해 이 기본계획 재검토하기로 했다. 그러나 탈핵 시민사회계의 공론화 과정 불참 선언과 극렬한 반대, 이에 따른 정 위원장의 사퇴로 다시 어려움에 부딪히게 됐다.

정 위원장은 일차적인 책임을 산업부에 돌렸다. 재검토위 구성 때부터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공론화를 진행해 탈핵시민계의 이탈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현 상황을 ‘반쪽 공론화’, ‘재검토(위)를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탈핵 시민사회계를 포함한 새 재검토위를 꾸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산업부가 아닌 대통령 직속 또는 국무총리 산하 기구에서 추진해 중립성과 공정을 담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원전 모습.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산업부는 정 위원장의 이 같은 주장에 유감의 뜻을 전하며 새 위원장 선출 후 공론화 절차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산업부는 같은 날 “정부는 준비단의 심층논의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사례를 참조해 중립 전문가로 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이를 통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의견수렴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시민사회계의 불참을 이유로 이 모든 노력을 불공정하며 반쪽 공론화로 평가하는 것에 유감을 표명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이어 “이미 위원회 결정 원칙에 따라 시민참여단을 구성하고 숙의 절차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의견수렴 절차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이라며 “더 수용성 높은 정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계의 대승적인 참여와 협조를 당부한다”고 덧붙였다.

산업부는 특히 탈핵시민사회계에 대해 “공론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토론장 밖에서 불공정을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며 “재검토위의 논의 체계는 항상 열려 있는 만큼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산업부의 지속 추진 방침에도 정 위원장의 사퇴로 당분간 공론화 논의는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재검토위는 지난해 15명으로 출발했으나 이미 2명이 사퇴하고 2명이 장기 결석 중이어서 실질적으론 11명만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정 위원장이 사퇴한 데 이어 일부 위원도 사퇴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위원장은 “제가 공정성을 문제 삼아 사퇴한 마당에 나머지 위원 중 가장 위원장을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설령 현 체제로 공론화 절차가 진행되더라도 국민이 과연 수용하겠느냐”고 덧붙였다.

탈핵시민단체 모임인 탈핵시민행동이 지난 5월20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월성 원자력발전본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건설 반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탈핵시민행동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