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들어올 때 노 젓자’…정유사들 공장 풀가동 ‘눈앞’

by박민 기자
2022.02.21 15:23:09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동반 상승에
석유제품 소비·수출 등 수요도 늘자
SK에너지,CDU 가동률 85%로 높여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 90%대 유지

[이데일리 박민 기자] 국내 정유업체가 국제유가와 정제 마진 동반 상승에 힘입어 원유정제설비(CDU) 가동률을 일제히 높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납사(나프타) 등 석유제품의 국내 소비와 해외 수출량이 늘어나는 등 수요까지 탄탄하게 받쳐주자 ‘물 들어올 때 노 젓듯’ 정유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며 수익 확보에 나선 모습이다.

SK에너지 울산컴플렉스 전경. (사진=SK이노베이션)
2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가장 큰 정제 능력을 보유한 SK에너지는 지난해만 해도 평균 68%에 그쳤던 CDU 가동률을 올해 1월 85%까지 끌어올렸다. SK에너지 관계자는 “지난해는 제품 크랙(원유와 석유제품 가격 차이)이 낮아 가동률이 60%대에 머물렀지만 최근 수요회복에 따른 시황 개선 추세를 반영해 가동률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GS(078930)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도 올 들어 90%대 CDU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다. 에쓰오일(S-OIL(010950))은 100%에 가까운 가동률(97.8%)을 유지하고 있고, 특히 윤활기유 설비는 이미 가동률 100%를 넘겨 풀 가동하고 있다. 초기에 운영 효율성 등을 고려해 임의로 설정한 생산능력(공칭능력)을 넘겨 운영하면 가동률이 100%를 넘은 것으로 본다. 이에 따라 국내 정유 4사 1월 CDU 가동률은 80%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월별 가동률은 한국석유공사에서 발표하며 1월 가동률은 아직 집계전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CDU 가동률을 무조건 높인다고 좋은 게 아니라 ‘석유 제품군별 생산량과 비중을 얼마로 두는 것이 가장 유리하겠다’ 등 제품별 최적수율을 따져 가동률을 정한다”며 “코로나19 여파로 위축됐던 석유제품 소비심리가 점차 회복하고 정제 마진 상승에 수익률도 개선해 가동률을 높이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유 4사의 CDU 평균 가동률은 2017년 100.4%를 기록한 이후 2018년 87.8%→2019년 82.8%→2020년 75.9%→2021년 74.4% 등 지난해까지 하락 추세를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유사들이 CDU 가동률을 일제히 높인 것은 견조한 석유제품 수요와 함께 정제 마진 개선 덕분이다. 정제 마진은 휘발유와 등유 등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과 수송·운영비 등을 뺀 값으로 정유사의 수익성을 가늠하는 지표다. 통상 배럴당 4달러 정도를 손익분기점으로 보는데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정제 마진 흐름은 이를 웃돌고 있다.

국제유가의 벤치마크로 통용되는 유종인 북해산 ‘브렌트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지정학적 위기로 고공행진하면서 지난달 28일엔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한 상태다. 이는 2014년 10월 이래 7년 만에 최고가다. 해외에서 원유를 수입해와 국내에서 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는 정유사는 운영 특성상 일정량의 원유를 비축해두는데, 유가가 오르면 비축해둔 원유의 가치가 상승하는 ‘재고평가이익’이 발생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무엇보다 석유제품 수요의 꾸준한 증가세도 CDU 가동률 상향에 한몫한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석유제품 소비량은 월별 기준으로 꾸준히 증가해 총 9억3682만6000배럴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8억7717만9000배럴)보다 6.7% 늘어난 수준이다. 여기에 석유제품 수출 또한 호조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정유사의 석유제품 해외 수출액은 332억 3534만 달러로 전년 대비 54.6%나 늘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도 전 세계 석유제품 수요가 늘 것으로 전망하는 만큼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CDU 최대 가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다만 문제는 고유가 장기화다. 국제유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경우 결국 석유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며 수요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제유가는 오르는데 수요가 받쳐주지 않으면 정유사들은 비용 부담이 커져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며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수요 추이를 지켜보며 CDU 가동률 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