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피해자 측 "정부안 동의 못해…총체적 '외교 실패'"

by권효중 기자
2023.03.06 15:55:23

피해자 대리인단·민족문제연구소 6일 기자회견
"韓 총체적 '외교 실패', 피해자 모욕" 비판
양금덕 할머니 등 피해 당사자들도 '정부안 반대'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일본제철과 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 강제 징용 소송 대리인단이 6일 외교부가 내놓은 배상안에 대해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 일본 가해기업의 사법적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양금덕 할머니를 포함, 피해 당사자들도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며 정부안에 반대 의사를 표했다.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피해자 대리인단, 지원단체 측이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피해자 소송 대리인단과 민족문제연구소는 6일 오후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희생을 강요하며 피해자들의 인권과 존엄을 짓밟고 있다”고 이같이 밝혔다.

이날 소송 대리인단은 “2018년 대법원의 확정 판결 이후 일본 피고 기업들은 일본 정부 뒤에 숨었고, 일본 정부는 경제 보복으로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며 “그 결과 당연한 피해자들의 요구는 ‘돌아가시기 전에 아무 돈이나 받으라’라는 모욕적인 답변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번 해법이 총체적인 한국 정부의 ‘외교 실패’라고 규정했다. 대리인단은 “일본에 당당하게 배상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선의에 기대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처럼 저자세로 일관했다”며 “형식적인 민관협의, 졸속인 국회 토론회, 요식 행위에 그친 피해자 의견 수렴 절차 등 총체적인 실패임을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소송 대리인단은 이번 정부의 해법에 동의하는 징용 피해자와 유족을 위해서는 채권 소멸(포기) 절차를 진행하고,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서는 대법원 판결과 동일하게 집행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소송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이번 정부 해법은 집행 절차에 영향을 줄 수 없다”며 “집행 절차를 통해 한국 정부 및 재단(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일방적 공탁 등이 이뤄진다면 이의 무효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집행 절차도 이어갈 예정이다. 임 변호사는 “지금도 지급할 수수료가 계속 발생하고 있고, 압류 및 추심 명령의 효력은 유효하다”며 “원고들에게는 직접 채권을 추심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회견을 함께한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와 같은 정부의 해법이 피해자 간 ‘편 가르기’가 될 수 있다고도 비판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돈을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 피해자에게 어떤 선택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춘식 할아버지를 포함, 3명의 생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정부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는 의사를 전했다”며 정부의 이번 절차를 비판했다.

같은 시간 양금덕 할머니 역시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잘못한 사람, 사죄할 사람이 따로 있는데 (3자 변제로는) 해결해서는 안된다”며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한편 대법원에서 배상 확정 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총 15명이다. 이 가운데 생존한 피해자는 양 할머니를 포함, 이 할아버지, 김성주 할머니 총 3명이다. 대리인단에 따르면 확정 판결 관련 피해자 중 절반 이상이 정부의 이번 배상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