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아닌 '사고'?…야권 "사건축소·책임회피"
by배진솔 기자
2022.11.02 16:28:59
국민의힘 '사고' 표기…민주당·정의당 '참사'로 표기
정부 "지명 뒤 참사 용어 부정적 이미지…중립적"
野 "국민 분노 줄이고 정부 책임 줄이려는 꼼수"
국가인권위 국정감사서도 여야 공방…내부 논의할 듯
[이데일리 배진솔 기자] 최소 156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온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해 정치권에서 ‘사고’와 ‘참사’, ‘사망자’와 ‘희생자’ 등 용어를 놓고 때아닌 논란이 일고 있다. 야권에서는 정부가 책임을 축소하기 위해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 정의당이 각각 애도 현수막을 걸어 놓았다. (사진=배진솔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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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정문에는 세 개의 애도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썼고, 국민의힘은 ‘이태원 사고 희생자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적었다. 사전적 정의로 ‘사고’는 뜻밖에 벌어진 불행한 일을 말하지만 ‘참사’는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거나 사건의 원인 규명이 필요한 경우를 의미한다. 사실상 두 단어 모두 의미로는 현 상황과 부합한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참사 대신 사고로,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표기하기로 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명 뒤에 ‘참사, 압사’라는 용어를 쓰면 그 지역 이미지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각인시켜 준다는 이유로 ‘사고’로 쓴다고 밝혔다. 또 ‘사망자’로 쓰는 이유에 대해선 “용어를 최대한 중립적으로 쓰는 일종의 내규”라며 권고사항이라고 했다. 대통령실도 같은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정부 방침대로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사망자 대신 희생자로 표현하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다. 사고나 사망자라는 표현을 쓴다고 상황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국가 애도 기간 이후 사고와 참사에 대한 용어를 규정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정부가 용어를 바꿔 책임을 축소하고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시민들이 조문하는 합동 분향소에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고 표기한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사가 아니라 사고라 해라, 희생자가 아니라 사망자라 해라, 여기에 더해 영정사진 붙이지 마라고 한다”며 “국민들 분노 줄이고 자신들의 책임을 줄이려는 꼼수다. 고통 속에 오열하는 국민 앞에서 이런 꼼수 쓰면서 유족과 피해자를 우롱해서야 되겠냐”고 비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이상민 장관은 국회에서 사과하던 바로 어제 이태원 참사를 사고로, 희생자를 사망자로 사용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며 “끝끝내 사건을 축소하고 책임회피에만 바빴다”고 지적했다.
우선 정치권은 ‘수습이 먼저’라는 여당의 지침에 따라 노골적 정쟁을 삼가고 있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용어를 두고 여야는 공방을 벌였다.
송두환 인권위원장은 분향소 명칭 변경을 건의하라는 민주당 의원들의 요구에 “내부 논의를 하겠다”며 “어느 용어를 금기시하는 건 불가하니, 자연스럽게 이 용어는 한쪽으로 통일돼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에서는 이날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 명칭을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