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지각변동]③美기업의 日키오시아 인수…韓에 '양날의 검'
by신민준 기자
2021.04.02 17:18:14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 키오시아 인수 추진
4강 구도 과점 체제 따른 가격 변동성 감소 등 호재
美·日연합 강화 가능성과 美기업 영향력 확대 부담
[이데일리 신민준 기자] 글로벌 낸드플래시 메모리시장에 지각변동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작년 SK하이닉스(000660)의 인텔 낸드사업부 인수에 이어 미국 반도체기업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일본의 키오시아(구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추진하면서 시장 재편 가능성도 점쳐진다. 특히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를 인수할 경우 한국기업들에게는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은 각각 키오시아와 300억달러(약 33조8400억원) 규모의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키오시아가 둘 중 한 곳과 인수 협상을 완료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키오시아는 낸드 제조기업으로 작년 4분기 낸드시장에서 시장 점유율 19.5%를 기록했다. 삼성전자(32.9%)에 이은 2위다. 뒤를 이어 웨스턴디지털(14.4%) SK하이닉스(11.6%) 마이크론(11.2%) 인텔(8.6%) 기타(1.8%) 등이다.
키오시아는 2018년 사모투자펀드(PEF) 베인캐피탈이 18억달러(약 2조3000억원)를 주고 도시바의 메모리 사업부문을 인수해 설립했다. 키오시아는 작년 기준으로 베인캐피탈이 49.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도시바가 40.2%, 호야가 9.9%를 보유 중이다. 최대주주인 베인캐피탈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애플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마이크론 또는 웨스턴디지털이 키오시아를 인수하는 이유를 크게 두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미국이 반도체 패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도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부품인 반도체를 더 이상 한국이나 대만과 같은 다른 나라에만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인프라 투자 방안으로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강화하기 위해 500억달러(약 56조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판매의 47%를 차지하지만 제조는 12%만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키오시아의 경우 일본 엘피다와 대만 이노테라 등 반도체기업들을 인수하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생산공장(팹)도 일본·대만·싱가포르 등 아시아지역에 위치해 있다. 웨스턴디지털은 키오시아와 낸드 생산공장을 같이 쓰고 있다.
반도체 굴기(몸을 일으킴)를 외친 중국을 견제하겠다 점도 또 다른 이유다. 미국과 무역전쟁에 따른 제재를 받고 있는 중국은 국가가 직접 나서 반도체 자립화를 위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지방정부와 민간투자까지 합쳐 매년 2000억위안(약 33조원) 반도체 산업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인 키오시아를 넘길지는 두고봐야 한다”면서도 “만약 인수가 성사되면 미국과 일본의 협력 관계가 더 끈끈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키오시아를 인수할 경우 한국 기업들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것으로 보인다. D램 시장처럼 과점 체제로 재편되면서 기업 간 출혈 경쟁할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점은 호재다. 낸드 시장은 정리가 된 D램 시장과 달리 10여곳의 기업들이 발을 담그고 있어 공급 과잉 등으로 인해 가격 하락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과점 체제가 낸드 가격 변동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미국과 일본의 연합 가능성과 미국 반도체기업들의 영향력 확대는 부담이다.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키오시아를 인수할 경우 1위인 삼성전자와 비슷하거나 다소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게 된다. 메모리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아직 높지만 막강한 자금력을 가진 미국 기업들이 반도체 산업에 집중할 경우 격차는 예상보다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 앞서 마이크론은 176단 첨단 적층(V) 낸드를 세계 최초로 양산한다고 밝힌 점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낸드 시장의 재편도 중요하지만 미국을 비롯해 중국, 유럽 등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을 더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 기업들도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경쟁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