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여고생 삶 망가뜨린 `딥페이크`

by이영민 기자
2024.08.28 15:48:48

■딥페이크 성범죄 덫에 걸린 10대들
"SNS 메시지로 알게 돼…하루에도 몇 번씩 울어"
학부모 "안전하다 여겨진 학교에서…가슴 미어져"
범죄 인지 부족해 골든타임 놓치기도
전문가 "범죄 예방 교육과 가해자 규제 논의 필요"

[이데일리 이영민 정윤지 김윤정 기자] “가해자는 충동적으로 한번 그랬대요.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사과는 못 듣고 변명만 듣고 있어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A(18)양은 28일 이데일리와 만나 딥페이크 성범죄 때문에 학교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A양의 고충은 지난 5월 모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익명의 제보자는 ‘디지털 성범죄에 연루됐고 텔레그램에 너를 능욕해달라는 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그가 보낸 내용에는 가해자가 ‘주민등록증을 훔쳤다’,‘능욕해 노예로 만들겠다’고 말한 내용도 담겨 있었다.

A씨는 제보자의 도움으로 같은 학교에 다니던 가해자를 찾았다. A씨는 “주소가 노출돼 집 밖을 잘 나가지 않고 나가도 주변을 살핀다”며 “가해자는 전학을 간 상태이지만 교실에 들어가는 것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을 왜 당했는지 이해되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딥페이크(Deepfake) 음란물에 피해자들의 삶이 망가지고 있다. 유포가 빠른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상 피해 역시 급속도로 확산되고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이데일리가 만난 피해 학생들은 이 같은 고통을 호소했다.

고등학생 박모(16)양은 지난 25일 친구들이 소개한 텔레그램 대화방에 접속했다. 참여자만 수백명에 달하는 이른바 ‘겹지방’(겹치는 지인방)이었는데 갑자기 그 중 한 명이 박양에게 ‘너 신상 털렸다’고 언급했다.

이튿날 익명의 한 사람이 박 양에게 ‘네 얼굴로 합성사진을 만드는 방이 있다가 사라졌다’며 딥페이크 사진을 보냈다. 텔레그램방에 접속할 때 넣은 사진이 활용된 음란물이었다. 박양은 “지금은 사용하는 모든 SNS에서 내 사진을 내린 상태”라며 “(가해자를) 못 잡는다는 인식이 많고, 그것이 현실이라 더 슬프고 화가 난다”고 토로했다.



박양과 같은 피해사례는 적잖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가 올해 1월부터 지난 25일까지 지원한 신규 피해자 502명의 절반가량(238명)은 미성년자였다. 지난해 지원 미성년자(298명 중 86명)와 비교하면 숫자와 비율 모두 급증세다.

문제는 범죄에 대한 인식과 대처능력이 미숙한 10대 피해자도 많아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명숙 디성센터 상담연계팀장은 “사건이 텔레그램 방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데 피해자가 자신의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사진이 유포되고 있어도 확인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어디서 증거를 찾아 경찰에 신고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고 누군가는 자신의 신상을 아는데 자신은 가해자를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 학교의 위치가 기록된 지도가 온라인에서 게시돼 있다.(사진= 딥페이크맵 캡쳐)
딥페이크 성범죄 소식이 이어지면서 학부모들도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40대 학부모 엄모씨는 “가장 안전하리라 믿어온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그런 범죄를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며 “범죄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을 텐데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중학생 딸을 둔 이정민(46)씨는 “딸이 학교 학원 가기 무섭다고 말해서 (이 일을) 알게 됐다”며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애가 조심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 아니니까 제대로 처벌하지 않으면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날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추가 범죄를 막을 교육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번 사태와 같은) 여성, 10대 범죄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가해자의 경우 입시에 불이익을 주는 등 형사처벌 이외의 실제적인 제재 규정도 함께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고은 법률사무소 진서 변호사는 “실제 영상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죄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어린 피의자도 있는 만큼 처벌뿐 아니라 교화와 범죄 예방 교육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교육부도 이에 대해 강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교육부는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 학생·교원 피해 현황을 집계한 결과 올해 1월부터 전날인 27일까지 피해신고 196건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학생이 피해자인 경우가 94.9%(186건)로 대다수를 차지했고 교원 피해는 5.1%(10건)로 집계됐다. 피해신고 196건 중 179건은 수사당국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또한 교육부는 ‘학교 딥페이크 대응 긴급 전담조직(TF)’을 만들어 피해자 지원 등에 나설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