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선하다는 것 믿으세요"…故이어령의 마지막 선물(종합)

by김미경 기자
2022.03.02 14:33:16

2일 문체부 국립중앙도서관서 영결식 엄수
운구 행렬, 옛 문화부 청사 돌아본 뒤 묘원 도착
‘시대의 지성’ 큰 발자취 남기고 영면
“애초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갑니다” 메시지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인간이 선하다는 것’을 믿으세요. 그 마음을 나누어 가지며 여러분과 작별합니다.”

대한민국의 큰 스승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이 생전에 남긴 이 말은 그의 유언이 됐다. 지난달 26일 89세를 일기로 별세한 고(故) 이어령 전 장관이 유족과 문화예술계 애도 속에 영면에 들었다.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엄수된 이 전 장관의 영결식에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을 비롯한 유족과 문화예술계·학계 인사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장례는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기 위해 문체부장으로 5일 간 치러졌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외벽에 마련된 초대형 미디어 캔버스‘광화벽화’에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생전 메시지와 추모 문구가 띄워져있다(사진=연합뉴스).
장례위원장인 황희 장관은 이날 조사를 통해 “고 이어령 장관님은 불모지였던 문화의 땅에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서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워 문화의 새 시대를 열어주셨다”며 “그 뜻과 유산을 가슴 깊이 새기고, 두레박과 부지깽이가 되어 이어령 장관의 숨결을 이어나가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시인인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추도사를 대신해 헌시를 공개했다. 이 전 회장은 “분단의 나라에서 냉전의 벽을 깨뜨리는 서울올림픽의 한 마당을 가로지르는 굴렁쇠 소년은 바로 선생님의 모습이었고 새천년의 아침에 북소리로 띄운 해는 이 나라 5000년 역사의 눈부신 새 아침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선생님은 이 땅의 한 시대의 어둠을 새벽으로 이끈 선각이시며 실천가셨다”며 “20세기 한국의 뉴 르네상스를 떠받친 메디치로 영원히 새겨질 것”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문학평론가인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도 추도사를 통해 “시인 레오폴드 세다르 생고르의 나라 세네갈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이 불탄다’고 한다”며 “한 생애가 축적한 귀중한 기억, 지식, 창의력의 도서관이 불타는 광경을, 속수무책, 지켜보고 있다”고 애통한 심경을 전했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엄수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후에는 고인의 생전 영상을 상영했다. 영상에는 고인이 이룬 업적을 비롯해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 돼라’와 같은 고인이 생전에 남긴 당부 말을 담았다. 이어 고인이 장관 시절 설립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학생들의 추모공연으로 영결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전임 문체부 장관들도 애도를 표했다. 2017년 6월부터 2019년 4월까지 재임한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우리시대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사람의 선한 마음을 믿는 그런 존경할 만한 분이셨다. 선생께서 문학으로 이루신 큰 성취를 잘 이어가자는 마음”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문체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 전 장관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분이라 마음이 많이 안타깝다”며 “우리 문화의 상징이었다”고 회고했다.

전임 문체부 장관인 도종환 시인과 유인촌 배우(사진=이데일리DB).
특히 고인이 영결식장으로 이동하는 중 옛 문화부 청사였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지날 때는 외벽에 설치된 초대형 미디어 캔버스 ‘광화벽화’에 고인의 생전 메시지를 표출해 애도의 뜻을 더했다. 문체부에 따르면 해당 문구는 고인의 유족들이 직접 선정한 것들이다. 고인은 “내가 받았던 빛나는 선물을 나는 돌려주려고 한다”며 “애초에 있던 그 자리로, 나는 돌아간다”고 전했다. 아울러 “여러분과 함께 별을 보며 즐거웠다”며 “하늘의 별의 위치가 불가사의하게 질서정연하듯, 여러분의 마음의 별인 도덕률도 몸 안에서 그렇다는 걸 잊지 말라”고 전했다.

문체부는 혁신적인 문화행정가였던 고 이어령 전 장관을 기억할 공간을 마련하는 등 문화행정에 대한 고인의 뜻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1933년(호적상 1934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한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 신설된 초대 문화부 장관(1990~1991)을 지냈으며, 60년 넘게 학자·언론인·소설가·비평가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불려왔다. 2017년 암이 발견됐지만 항암 치료를 받는 대신 마지막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강 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지역 검사로 일했다가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고인은 충남 천안공원묘원에서 영원히 안식에 들었다.

고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영결식이 2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 가운데 황희 장관이 조사하고 있다(사진=사진공동취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