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정수영 기자
2017.10.30 14:00:09
[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요? 누가 되든지 무슨 상관입니까.”
얼마 전 만난 한 증권사 임원은 시큰둥한 말투로 이렇게 반응했다. 거래소 신임 이사장에 누가 되느냐를 치열하게 취재하고 있던 기자들과는 달리 금융투자업계는 새 이사장에 누가 되느냐에 별다른 관심도 없고 의미도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 임원은 “어차피 거래소는 금융위원회 산하기관 아닌가. 금투업계 의견을 잘 취합해 금융위에 전달하는 역할보다는 금융위의 지시를 받는데만 신경쓰는 게 거래소다. 그 수장이 누가 되는지는 우리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 임원의 얘기는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거래소는 금융위 산하기관도, 공공기관도 아니다. 엄연히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민간 주식회사다. 수십년 째 금투업계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이 임원이 이 같은 사실을 몰라서 이런 얘기를 했을리 없다. 오히려 지난 2015년 공공기관에서 해제됐음에도 거래소가 여전히 직·간접적인 금융당국의 간섭과 통제를 받고 있는 데서 오는 불만일 가능성이 높다. 일례로 최근 금융위는 코스닥시장 활성화 방안의 일환으로 시장간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코스피·코스닥 본부별 평가제도를 도입하고 코스닥본부에 대해서는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얘기를 전해 들은 거래소 직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한 직원은 “이건 거래소 신임 이사장이 발표해야 할 얘기 아니냐”며 불만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거래소는 어떤 집단인까. 지난 1956년 국내 최초로 증권시장을 개설하면서 대한증권거래소로 시작한 거래소는 지난 2005년 코스닥증권과 선물거래소를 통합한 후 현 위치까지 왔다. 그 새 하루 평균 90조원 넘는 금융투자상품이 거래되는 자본시장 최고 책임자가 됐고 시가총액 기준 세계 11위 시장에 올랐다.
그렇지만 양적 성장과 달리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는가, 한국 증시에 대한 글로벌 기관들의 평가는 어떤가를 되짚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독립성의 문제다. 상장사에 대해선 지배구조 개편, 기업공개(IPO)를 부르짖으면서 정작 거래소는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치권의 입김에, 지역 안배주의에 휘말려 제 갈 길을 못 찾고 있는 상황이다. 이사장 공모가 대표적인 사례로,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매번 되풀이 되는 낙하산 인사는 거래소의 위상을 떨어트리는 주범이 되고 있다. 거래소의 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작업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경쟁력이 떨어지는 코스닥시장을 코스피와 분리할 순 없다 하더라도 거래소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서울과 부산이란 지역적 이기주의로 인해, 해당 지역 정치인들의 표밭 관리로 인해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각 시장간 정체성 확립도 서둘러야 할 과제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정부가 코스닥 활성화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또 정권 교체로 정책노선이 흔들린다면 코스닥은 `코스피 2부 리그`라는 오명을 결코 벗지 못할 것이다. 거래소 내부에서도 코스닥을 코스피 이전을 위한 사다리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파다한 게 현실이다. 시장간 정체성 미확립은 분명 우리 증시에 걸림돌이다. 단순히 일회성 제도만으로 상장사들을 코스닥에 묶어둘 순 없다. 코스닥이 정부의 바람대로 중소벤처 육성을 위한 자금창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거래소가 나서야 한다. 시장간 정체성부터 바로 잡고 각 본부가 경쟁과 협력으로 자본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