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검찰권 남용 '도마'…이태종 前법원장도 무죄 확정(종합)
by한광범 기자
2021.12.30 15:50:00
직원비리 수사정보 법원행정처 유출 혐의로 기소
法 "제도개선책 마련 차원…수사방해 목적 없다"
5연속 대법 무죄…하급심도 2명 제외 줄줄이 무죄
이태종 "법치국가서 檢이 법원장 협박…자괴감"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현 수원고법 부장판사)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소위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에 대한 5연속 대법원 무죄 판결이다. 또다시 검찰의 무리한 수사·기소가 도마에 올랐다.
|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사진=연합뉴스) |
|
30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법원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전 법원장은 서울서부지법원장 시절인 2016년 8~11월 사이 서부지법 소속 집행관사무소 사무원들의 비리 수사가 시작되자 수사 정보를 빼내 이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 등에게 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이 전 법원장이 법원 직원들에 대한 수사 확대를 막기 위해 소속 직원들을 시켜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서를 복사하고, 영장전담판사들에게 영장 내용을 기획법관이던 나모 판사에게 제공하도록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 전 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전 법원장이 임 전 차장으로부터 지시나 부탁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할 자료가 없고, 수사 확대 저지를 위한 어떠한 조치를 실행하거나 마련한 사실이 전혀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수사 확대 방어 목적’이라는 검찰의 주장에 대해서도 “제도 개선책 마련을 넘어 수사 확대를 저지하려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2심도 “사법행정사무를 관장하는 기획법관 지위에 있던 나 판사가 직무상 비밀 취득 자격이 있던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정보를 전달한 것”이라며 “공무상 비밀누설죄에서 말하는 ‘누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아울러 이 전 법원장이 직권을 남용해 서부지법 직원들에게 영장청구서 내용을 복사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그 같은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냈다.
이 전 법원장에 대한 대법원 무죄 판결은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중 유해용 전 부장판사,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 이은 다섯 번째다. 서부지법원장 근무를 마친 후 2018년 2월 서울고법 재판부로 복귀했던 이 전 법원장은 2019년 3월 기소된 후 재판업무에서 배제됐다 1심 무죄 판결 이후인 지난해 8월 재판 업무에 복귀했다.
그는 기소 후 법정에 출석해 “청천벽력 같은 기소였다”며 “어둠이 밝음을 이기지 못한다. 법정에서 적법한 증거에 따라 실체 관계가 밝혀지고 끝내 정의가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또 2심 결심공판에선 “검찰은 법원장 정도를 기소해야 자신들이 돋보인다고 생각한 것인지, 사건에 관여하지 않은 저를 기소 대상으로 삼았다”며 “검사가 현직 법원장을 조사하며 회유·협박하는 것이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자괴감이 든다”고 성토했다.
지금까지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기소한 14명의 전·현직 법관 중 한 번이라도 유죄 선고를 받은 경우는 1심에서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뿐이다. 두 사람은 각각 통합진보당 행정재판 관련 기밀누설, 배당 조작 혐의로 기소된 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방창현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과 함께 내달 27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밖에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시절 재판에 개입해 탄핵소추까지 됐던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월권’이라는 판단에도 불구하고, 법리상으로 검찰이 기소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죄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1·2심 무죄를 선고받은 후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의 의사결정을 주도했던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 역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선 애초 양 전 대법원장 등 핵심 인물들만을 수사대상으로 삼았던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무리하게 대상을 확대하다 지금과 같은 ‘검찰권 남용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애초 검찰이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마구잡이식 수사로 사태와 무관한 법관들을 엮은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