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금싸라기 땅' 개발 멈춘 사연은?

by양희동 기자
2013.10.23 17:54:22

역삼 아파트지구 잔여지, 오세훈 전 시장 때 개발 추진
박원순 시장 취임 후 돌연 지구 해제
개발 기대했던 주민들 ''허탈''..땅값 하락세

[글·사진=이데일리 양희동 기자] “역삼지구 잔여지(자투리 땅) 개발을 허용하면 서울 아파트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칠까봐 못하게 막은 것 아니겠어요.”(서울 강남구 역삼동 주민 정모씨)

지난 22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분당선 한티역. 이곳 바로 옆에는 높이 솟은 아파트 단지를 등지고 택시 차고지와 승합차를 개조한 기사식당, 신발 가게, 청과물 점포 등 낡은 가건물들이 줄지어 자리잡고 있었다. 땅값이 3.3㎡당 7000만원을 넘는 이곳은 역삼동 아파트지구의 자투리 부지다. 더 이상 아파트를 짓기에는 공간이 협소해 남겨진 땅이지만 아파트지구로 묶여 있어 오랜 세월 개발이 제한돼 왔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인 2010년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 기대감을 높였지만, 최근 서울시가 역삼지구 잔여지에 대한 1종 지구 해제를 고시해 다시 침체 분위기다.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분당선 한티역 일대 아파트지구 잔여지에 형성된 골목 양쪽으로 상가 점포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2010년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면서 개발 기대감을 높였으나 3년만에 지구 지정이 해제되면서 침체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아파트지구 잔여지는 대부분 고가 아파트 단지와 접한 역세권이라 서울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땅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서울에는 강남·강서·서초·용산구 등에 총 14만3113㎡(358필지)에 달하는 잔여지가 있다. 문제는 이 땅에는 주택만 지을 수 있어 개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20년 넘게 단독주택이나 빌라·연립주택 등만 들어서 입지에 비해 투자 가치가 낮았다.

오 전 시장 재임시절인 2009년 7월 서울시가 조례 개정을 통해 아파트지구 잔여지에 연면적 50% 범위 내에서 상업용도인 제1·2종 근린생활시설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특히 총 4만7055㎡규모의 역삼지구 잔여지는 2010년 아파트지구에서 분리,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변경되면서 단숨에 강남권 최고의 노른자위로 떠올랐다. 당시 강남구는 지구단위계획 수립을 통해 높이 40m이하(10~15층)의 상업용 건물 신축을 허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인 지난해 11월 서울시는 강남구가 제출한 역삼지구 개발기본계획을 보류했다. 결국 역삼지구 잔여지는 3년 이내에 지구단위 계획을 결정·고시하지 못해 지난 6월 1종 지구단위계획 구역에서 해제됐다.

지역 주민들은 서울시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개발 계획을 보류시킨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역삼지구 토지주인 김모(55)씨는 “작년 7~8월 주민 공청회도 모두 거쳤고, 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서도 기대를 걸었는데 서울시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지구 지정을 해제했다”며 “건물을 증축하려던 일부 땅 주인은 1종 지구 지정이 취소되면서 건축 설계를 전부 바꿔야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에서조차도 개발 반대 여론을 찾아보기 어렵다. 역삼지구 잔여지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40·여)씨는 “상당수 세입자들이 개발이 시작되면 가게를 빼는 조건으로 임대차 계약을 했기 때문에 개발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개발 기대감이 꺾이면서 땅값도 하락세다. 역삼동 땡큐투공인 이인렬 대표는 “1종 지구 지정 당시에는 땅값이 3.3㎡당 1억원은 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며 “하지만 지금은 3.3㎡당 3000만~4000만원을 호가하는 부지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역삼지구가 전체 아파트지구 잔여지 개발의 기폭제가 될 것을 우려해 서울시가 이를 막은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강남구 주택과 관계자는 “서울시가 다른 아파트지구와의 형평성 문제를 들어 역삼지구 잔여지 개발에 반대한 것으로 안다”며 “시 차원에서 아파트지구 전체에 대한 조사를 벌여 개발 가능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아파트지구라는 용어가 법령에서 삭제돼 새로운 관리방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용어 삭제는 이미 10년 전인 2003년 이뤄졌고, 이후에도 정비구역에 준해 별다른 문제없이 관리되고 있다. 그런데도 시는 내년 4월 아파트지구에 대한 관리 방안 용역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역삼지구를 포함한 모든 잔여지에 대한 개발을 중단시킨 상태다. 내년에 용역 결과가 나온다 해도 실제 관리방안이 최종 수립될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곽창석 ERA코리아 부동산연구소장은 “총 1126만㎡에 달하는 서울 내 18개 아파트지구는 이미 20~30년 전 개발이 끝났고, 잔여지는 지구 전체의 1.2%인 14만㎡에 불과하다”며 “서울시가 전체 아파트지구의 관리방안 수립을 이유로 개발을 막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안지아 한국부동산연구원 박사는 “서울시가 이미 3년 전 1종 지구 지정을 허가한 곳을 개발 추진 계획이 없는 다른 잔여지와의 형평성을 들어 번복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자료:서울시>
▲역삼지구 잔여지 위치도. <제공:서울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