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 YCC '깜짝' 수정…'무제한 돈풀기' 벗어나나

by방성훈 기자
2023.07.28 18:16:50

“10년물 금리 0.5% 초과 용인, 1% 넘어야 무제한 매입"
사실상 장기금리 변동폭 상향…시장 “YCC 종말 시작”
우에다 “정책 정상화 아냐…금융완화 지속 위한 결정”
日금융시장 ''출렁''…10년물 9년만에 최고·엔화가치↑

[이데일리 방성훈 이명철 기자] 일본은행(BOJ)이 대표 양적완화 정책인 수익률곡선제어(YCC) 정책을 수정했다. 장기금리가 상한인 0.5%를 초과해도 용인하고, 무제한 국채 매입도 금리가 1%를 넘어설 때에만 시행하기로 했다. 오랜 기간 지속해온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서 벗어나 긴축으로 방향을 틀겠다는 신호를 준 것으로 해석되며 일본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AFP)


28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등에 따르면 BOJ는 전날부터 이틀 동안 진행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가 0.5%를 초과해도 시장 상황에 따라 어느 정도는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무제한 국채 매입을 위한 금리 기준을 기존 0.5%에서 1%로 끌어올리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YCC 정책을 대폭 수정한 것으로 이날부터 적용된다.

BOJ는 “대규모 국채 매입을 통해 금리를 억제하는 YCC 정책을 보다 유연하게 운영해 시장 왜곡을 완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YCC 정책을 수정한 이유에 대해 “금융완화의 지속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물가 목표 달성에도 기여하는 조치”라며 “장기금리를 0.5%로 엄격히 억제하려 하면 채권시장 등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완화를 계속하기 위해 부작용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만기가 짧을수록 금리가 낮은데, 일본에선 BOJ가 10년물 국채를 무제한 사들여 장기금리가 더 낮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지속 불만을 제기했다. 앞서 BOJ는 지난해 12월에도 기업들의 차입부담 완화를 이유로 장기금리 상한을 기존 0.25%에서 0.5%로 상향한 바 있다.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 긴축을 지속하는 미국·유럽과의 장기금리 격차 확대로 엔화가 약세를 보인다는 점 등도 이번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BOJ는 이날 발표한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연 2.5%로 전망했다. 직전 4월 전망(1.8%) 대비 0.7%포인트 상향한 것으로, BOJ의 물가 목표(2%)를 크게 상회한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전년 동월대비 3.3%를 기록, 15개월 연속 BOJ 목표치를 웃돌았다.

우에다 총재는 “4월엔 불확실성을 과소평가했다”며 “물가 리스크가 현실화한 이후 뒤늦게 대응하려면 힘들다. 정책 수정이 늦어져 시장 압력이 강해지면 YCC를 포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전에 대응 여지를 넓히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는 “졸속한 긴축 위험성이 더 크다. 기다리는 비용은 크지 않다”고 언급했던 기존 견해에서 태도를 크게 전환한 것이라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BOJ는 이날 단기금리를 마이너스(-)0.1%로 동결하고, 장기금리 지표인 10년물 국채 금리 변동폭을 ‘0%에서 ± 0.5% 정도’로 유지한다는 완화 정책의 큰 틀은 그대로 놔뒀다.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정책도 변경되지 않았다. 우에다 총재는 마이너스 금리 해제에 대해선 “아직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0.5% 초과 금리를 용인하고 무제한 매입 기준을 1%로 높인 것은 사실상 장기금리 변동폭 상한을 1%로 높인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다양한 해석과 전망이 나온다. 시장에선 사실상 긴축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출구전략에 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했다. 벤자민 샤릴 JP모건 외환 전략가는 “작지만 거대한 도약”이라며 “시장은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와 관계없이 이번 결정을 ‘YCC 종말의 시작’이라고 결론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BOJ가 향후 장기금리 변동폭 상한을 공식적으로 1%까지 높이거나, YCC 기준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YCC를 아예 폐지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우에다 총재는 “1%는 심리적 상한선이다. (장기금리가) 1%에 다가갈 가능성은 낮다”며 추가 상향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통화정책 정상화가 아니라 YCC 정책의 지속성을 높이려는 움직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닛케이도 통화정책방향 성명을 보면 ‘끈기있게 금융완화를 해 나갈 방침’이라는 문구가 다시 담겼다며 “이번 결정이 통화정책 정상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2024년(1.9%)과 2025년(1.6%) 물가 전망치를 고려하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2% 물가 목표’를 실현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우에다 총재도 “임금 상승을 동반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2% 물가 목표 실현을 전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금리 형성을 시장에 맡기는 것이냐는 질문엔 “기본적으로 그렇다”라고 답했다. 다만 “근거없는 투기적 채권 판매가 확산하지 않도록 BOJ가 속도를 조정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동성이 커지면 0.5~1% 금리에서도 개입하겠다는 설명이다.

한편 YCC 정책 수정이 확정되며 이날 일본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장기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엔화가치가 급등했다. 일본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장중 한때 0.575%까지 상승해 2014년 9월 이후 9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미국 달러화 대비 엔화가치도 한때 138.07엔까지 뛰었다. 채권에 매수세가 쏠리면서 닛케이 225지수는 전거래일대비 0.40% 하락 마감했다.

미국 국채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간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장중 16bp(1bp=0.01%포인트) 이상 급등해 4%를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매수하는 일본 투자자들이 자국 국채를 사들이는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며 시장 변동성이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닛케이는 “YCC 정책 수정에 따른 시장 충격이 세계로 퍼지면 BOJ의 통화정책 정상화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