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삶, 역경…영광…좌절… ‘반전 드라마’

by경향닷컴 기자
2009.04.30 21:17:19

[경향닷컴 제공]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은 ‘반전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16대 대통령이 될 때까지 역경은 숱했지만 결과는 영광이었다. 권좌에서 물러난 지 1년여 만에 노 전 대통령은 좌절의 나락에 떨어져 있다.

1946년 봉하마을에서 태어난 노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저돌적 기질이 다분했다. 키가 작다고 ‘돌콩’, 머리가 좋다고 ‘노 천재’라고 불린 그는 진영중 1학년 때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 기념 교내 글짓기대회가 열리자 ‘백지동맹’을 주동하다가 정학당했다. 그는 제대 후 막노동판을 전전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고 ‘4수’ 끝에 75년 사시에 합격했다. 부산에서 세무·회계 전문 변호사로 ‘잘나가던’ 그는 81년 부림사건 변호에 참여하면서 ‘인권변호사’가 됐다.

88년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한 그는 5공비리 특위 청문회에서 치밀한 추궁과 ‘명패 투척 사건’ 등으로 ‘청문회 스타’가 됐다. 그러나 90년 3당 합당 때 합류하지 않으면서 시련이 시작됐다. 92년 총선과 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 연거푸 낙선했다. 96년 15대 총선에선 서울 종로에 출마했다가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나선 이명박 대통령과 붙어 떨어졌다. 98년 ‘이명박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당선됐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고 부산에 출마했다가 지역주의에 막혀 낙선했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는가”라는 말을 남긴 그에게 ‘바보 노무현’이란 애칭이 붙었고, 자발적인 팬클럽인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결성되면서 대권가도를 열었다. 2002년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거쳐 16대 대통령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원칙’을 강조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재임 기간 내내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했다. “인사청탁하다가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 등의 발언은 참여정부 도덕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여지없이 허물어졌다. 그의 재임시절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해 정상문 청화대 총무비서관 등 참모들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고 있었다. 민주당 이광재 의원, 안희정 최고위원 등 최측근 인사들도 연루됐다. 안에선 부패의 사슬에 얽혀 있었던 것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퇴임 1년2개월 만인 지난 30일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검찰의 소환조사를 받는 세 번째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썼다. 구속된다면 전 전 대통령 다음으로 ‘전직 대통령 형제 구속’이라는 치욕도 맛봐야 한다.

소신 있는 행동과 투박함으로 ‘최고의 영예’에 올랐던 노 전 대통령은 지금 끝모를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제 ‘자연인’으로서 검찰의 창에 맞서고 있다. “더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라는 당부만 던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