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상초유' 이노그리드 예심 승인 취소 사태…VC, 투자회수 어쩌나
by송재민 기자
2024.06.20 19:00:53
파두 이후 투심 회복하나 했는데 ''난감''
증권신고서 7차례 정정해 심사만 1년 소요
IPO가 절반…의존 큰 국내 VC 투자회수 시장
자금조달 시점 예상·사업 영위 힘들어져
[이데일리 마켓in 송재민 기자] 다음 달 코스닥 입성을 노리던 이노그리드의 상장예비심사 승인 효력이 취소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파두 사태’ 이후 까다로워진 기업공개(IPO) 심사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투자 심리 위축으로 벤처캐피탈(VC)과 사모펀드(PEF) 운용사의 투자금 회수에 차질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클라우드 기술 기업 이노그리드는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예비심사 승인 취소 통보를 받았다. 1996년 코스닥 시장 개장 이래 예비심사 단계에서 불승인이 떨어져 상장이 취소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노그리드는 앞으로 1년 이내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없게 됐다.
이노그리드는 앞서 증권신고서를 7차례 정정하면서 상장 심사 기간에만 1년 가까이 소요됐다. 파두(440110) ‘뻥튀기 상장’ 사태 이후 기술특례 상장 기준이 까다로워진 탓에 오랜 심사기간을 거쳤지만 금융감독원에 이어 거래소로부터 철퇴를 맞았다. 거래소가 상장 예심 효력을 불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건 최대주주의 지위 분쟁 관련 사항을 심사 신청서에 누락했다는 이유에서다. 회사 측은 주요 사항이 아니라 기재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파두 사태의 후폭풍이 이번 사태로까지 이어지자 벤처투자업계에선 투자금 회수 방안이 막히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서히 공모주 시장이 회복되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투자 심리가 위축돼 IPO 병목 현상이 재발할 수 있다는 추측이다. VC가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데에는 IPO를 포함해 인수합병(M&A), 장외매각 등 여러 방법이 있으나 국내 회수시장은 IPO에 집중돼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VC들의 회수 유형은 IPO가 45%를 차지할 정도로 주식시장에 기대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이 장기화하면서 전반적인 투자회수 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주식시장에서 성공적인 IPO가 이뤄진다면 VC의 자금 경색도 완화될 수 있다. 반대로 회수가 어려워질수록 신규 투자도 위축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노그리드가 향후 1년간 상장예비심사를 신청할 수 없게 되자 회사에 투자한 VC들도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노그리드가 유치한 투자금은 총 161억원으로, 지난 2022년 60억원 규모의 시리즈B 단계에서 JB인베스트먼트, 한국투자증권, 엘에스증권, 오픈워터인베스트먼트 등이 투자에 들어왔다.
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길어지면서 IPO를 통한 자금 조달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노그리드도 1년 넘게 심사 통과를 기다리면서 이미 대규모 투자 계획이 미뤄지는 등 시기를 놓쳤단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대부분 벤처기업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상장 도전에 나서는데, 도전 자체의 문턱이 높아져 본업이 미뤄지고 사업력이 약화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술특례상장 기업의 경우엔 공모자금의 유입 없이 재무상태를 유지하면서 사업을 영위하는 데에 어려움이 뒤따른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더 큰 투자자 피해가 발생하기 전에 사전에 차단하는 건 좋지만 회수 시장이 경색돼 모험자본 투자 생태계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며 “하반기에도 케이뱅크, 시프트업 등 대형 IPO가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 (이노그리드 사태로 인한) 파급력이 어디까지 번질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