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장순원 기자
2015.06.29 15:14:37
30일 IMF 채무불이행 불가피
내달 5일 국민투표 최대 분수령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그리스가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 주말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국제 채권단의 협상안을 국민투표에 넘기면서다. 국가부도(디폴트)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하면서 그리스 국민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으로 몰려갔고 그리스 정부는 당분간 은행 문을 닫기로 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스는 파국을 피하고 유로존에 남을 수 있을까.
그리스 정부가 일단 29일부터 예금인출 규모를 제한하는 긴급 처방을 내렸다. 뱅크런을 우려한 자본통제 조치다. 전날 그리스가 유럽중앙은행(ECB)에 긴급유동성지원(ELA) 증액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하면서 예견됐던 상황이다. 그리스 금융권이 ECB의 ELA로 겨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자금지원이 없으면 예금자에의 인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돈줄이 막힌 그리스의 운명은 ECB 손에 달려 있다. 만약 ECB가 자금지원을 끊는다면 그리스 경제는 곧바로 마비된다. 이런 상황이 닥친다면 새 화폐를 발행하는 수밖에 없다. 이른바 그렉시트의 현실화다.
일단 ECB는 증액 요구는 거절한 채 850억유로 수준의 지원금 규모를 유지하기로 했다. ECB의 조치는 그리스가 최악의 사태로 치닫는 것은 막으려 인공호흡기는 유지한 채 그리스의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뜻이다.
현재로서는 오는 30일이 1차 고비다. 이날 그리스는 IMF에서 빌린 15억유로를 갚아야 한다. 그리스의 곳간이 텅텅 비어 현재로서는 빚을 제때 갚기 어렵다. IMF는 그리스의 빚 상환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터라 이달 30일이 지나면 그리스가 사실상 디폴트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그리스의 금융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IMF는 회원국이 돈을 갚지 못할 때 체납(arrears)으로 규정한다. 국제신용평가사도 민간 채권자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할 때만 디폴트로 보고, IMF나 ECB 같은 공공기관 채무를 갚지 못한 경우는 디폴트가 아니라고 해석한다. 현 상황이 이어진다면 중장기적으로는 그리스가 국가 부도(디폴트)로 진행하겠지만 그리스가 일단 국민투표까지 은행 문을 닫은 뒤 투표 결과에 따라 대응할 수 여지는 있다는 얘기다.
5일 예정된 국민투표는 그리스 사태의 운명을 가를 최대 이벤트가 될 전망이다. 그리스 국민이 국민투표에서 채권단의 요구를 수용하는 데 반대한다면 유로존에서 떠나겠다는 뜻으로 그렉시트가 불가피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절반이 넘는 그리스 인들은 여전히 유로존에 남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이 채권단의 경제개혁안에 찬성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치프라스 정부는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이 채권단의 경제개혁안에 찬성하면 뜻에 따르겠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노골적으로 채권단의 요구를 거부한 치프라스 정부에 대한 불신임만큼 내각 총사퇴와 조기총선이 불가피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돈이 바닥난 그리스로서는 돈을 빌려야 하는데, 30일 구제금융 지원이 종료되면 자금을 끌어올 곳이 마땅찮다. 새 구제금융안은 유럽 회원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특히 독일은 하원의 인준이 필요할 정도로 조건이 까다롭다.
그리스는 다음 달 20일 ECB에 35억유로를 갚아야 한다. IMF 채무불이행에 이어 ECB 돈까지 제때 갚지 못한다면 그리스로서는 치명타다. 디폴트의 낙인이 더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ECB로서도 국민세금으로 그리스를 지원하는 데 비판 여론이 크다는 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ECB가 이 기간을 넘기면서까지 그리스의 유동성 지원을 계속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다. 그리스로서는 ECB의 지원을 받는 다음 달 20일까지 국민투표와 조기총선, 새 정부 수립까지 마쳐야 하는 시간과의 피 말리는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