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 9개월간 2400명 짐쌌다

by김국배 기자
2023.08.30 17:00:36

디지털화로 지점 수 감소 영향
좋은 조건에 인생 2막 설계 분위기
4대 은행 1년새 점포 120여개 줄어

[이데일리 김국배 기자] 고임금 ‘화이트칼라’의 대명사인 은행원들이 줄줄이 짐을 싸고 있다. 비대면·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은행 지점이 줄어드는데다, 풍족한 퇴직 조건에 과거에 비해 서둘러 ‘인생 2막’을 설계하려는 분위기가 맞물려서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작년 12월부터 올 들어 이달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에서만 2400명 이상이 짐을 싼다.

KB국민은행에선 올해 1월 작년 희망퇴직자(674명) 규모를 웃도는 713명이 회사를 떠났다. 같은 달 390여명을 내보낸 신한은행은 이달 2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아 230여 명이 조만간 회사를 떠날 전망이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희망퇴직을 실시해 올해 각각 339명, 349명이 떠났고, NH농협은행 역시 작년 마지막 날 493명이 희망퇴직을 했다. 8개월간 2430여 명이 은행을 떠나는 것이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희망퇴직 대상 연령도 낮아지는 추세다. 최근 신한은행은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면 만 40세가 안 되는 1983년생까지 희망퇴직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서 은행원 숫자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4대 시중은행의 임직원 수는 5만5325명으로 3년 전(2020년 상반기·5만9461명)보다 6.9% 감소했다.



은행원을 줄이는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금융 확산으로 지점 수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속도까지 빨라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광주 동남갑) 의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4대 은행의 오프라인 점포 570곳이 폐쇄됐다. 2018년 36곳, 2019년 50곳에서 2020년 161곳, 2021년 169곳, 지난해 154곳으로 크게 늘었다.

이날 각 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보면 KB국민은행의 점포 수는 794개로 1년 전(878개)보다 9.5%(84개) 이상 줄었다. 은행 지점이 가장 많은 KB국민은행이 4대 은행 가운데 폐쇄율이 높았다. 우리은행도 728개였던 점포가 708개로 20개가 줄어 폐쇄 지점이 많은 편이었다. 신한은행 점포 수는 741개에서 722개로 19개 줄었으며, 지점 수가 제일 적은 하나은행은 597개에서 594개로 3개가 적어졌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영업점 통폐합의 대안으로 영업점 운영시간을 오후 4시에서 오후 6시까지로 확대한 ‘9To6 Bank’를 운영 중이며, 고령층 고객을 위한 이동점포인 ‘KB 시니어 라운지’를 비롯해 디지털 제휴점포 ‘KB디지털뱅크’ 등 여러 형태의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근엔 ‘조건’이 좋을 때 목돈을 챙겨 나가 인생 2막을 설계하려는 분위기도 작용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 얘기다. 전직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교적 젊은 직원들 사이에선 퇴직 조건이 좋을 때 그만두고 제2의 도전을 하겠다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의 ‘5대 은행 성과급 등 보수체계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2022년 1인당 평균 총 퇴직금은 5억4000만원으로 집계됐다. 평균 법정 기본퇴직금 1억8000만원에 특별 퇴직금 3억6000만원을 합한 것으로, 전년(5억1000만원)보다 3000만원 늘었다. 거꾸로 얘기하면 디지털 전환 여파 등으로 좋은 조건을 내걸어서라도 은행원을 줄여야 하는 것이 은행의 상황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