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진우 기자
2012.07.26 17:52:30
[이데일리 이진우 기자] 지난 5월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부동산 중개업소는 8만4196개다. 서울에만 2만3000곳이 넘는다. 전국의 편의점 숫자가 2만개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편의점 1곳이 있는 동네에 복덕방은 4곳이나 된다는 뜻이다.
부동산 중개업소가 많은 걸 시비하자는 게 아니다. 상가의 목이 제일 좋은 자리를 부동산 중개업소가 꿰차고 있다는 게 문제다. 중개업소들 대여섯곳이 나란히 1층 점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월세가 가장 비싼 자리, 사람들이 제일 자주 드나드는 목좋은 자리를 부동산 중개업소가 차지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 이만저만한 낭비가 아니다.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고스란히 그 불똥을 맞았다. 목좋은 상가 1층 자리는 오가는 유동인구가 필요한 식당이나 구멍가게 옷가게 반찬가게들이 들어와야 하는 자리다. 그러나 임대료가 너무 비싸 엄두도 못낸다. 비싼 월세라도 내겠다는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줄을 서 있으니 구멍가게에 그 자리가 돌아갈 리 없다.
이게 다 부동산 중개수수료율이 너무 높아서 생긴 일이다. 주택들이 밀집되어 있고 거래량이 많으면 중개서비스도 ‘규모의 경제’가 이뤄져 가격(수수료)이 낮아지는 게 시장 원리다. 그러나 정부가 수수료율을 딱 정해서 못을 박아놓고 거래량이 늘던 거래가격이 오르던 신경쓰지 않는 바람에 중개서비스의 가격이 내려가지 못하고 오히려 중개 수수료 시장규모만 훌쩍 커져 버렸다. 먹을 게 많아지니 업자들이 몰려들고 목좋은 1층 점포는 금방 동이 난다. 월세는 계속 오르고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자꾸 구석진 곳으로 밀려난다. 원피스 100벌, 만두국 1000그릇을 팔아야 생기는 돈이 아파트 한 채만 중개하면 뚝 떨어지니 비싼 월세를 감당할 수 있다.
주민들도 불편하다. 매일 찾아야 하는 가게는 구석진 곳으로 밀려나 있고 기껏해야 1~2년에 한번씩 찾는 부동산 중개업소는 제일 눈에 띄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동선이 늘 꼬인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이라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한달에 3~4건만 중개하면 월세와 인건비가 나오기 때문에 파리가 날리더라도 1층 목좋은 곳을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기껏해야 2년에 한 번씩 거래하는 업소에 단골이라는 게 있을 리 없다. 대부분 지나가는 길에 눈에 띄는 부동산 중개업소에 매물을 의뢰하는 뜨내기 손님들이라 좋은 자리가 생명이다. 월세를 줄이겠다고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간 그 중개업소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
목좋은 점포를 차지한 채 하루 종일 신문만 뒤적이고 있는 고급인력들을 생산적인 다른 일터로 유도하고 그 자리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에게 돌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정부가 중개수수료율을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있게 조정할 재간이 없다면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상가 1층에 점포를 열지 못하게 하는 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1층에 중개업소가 없다면 필요한 고객은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갈 것이고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자리 싸움은 그 곳에서 하면 된다.
중개업소들을 탄압하는 정책이 아니다. 공익을 위한 합리적 담합을 유도하는 것이다. 중개업자들도 위층으로 올라가면 비싼 월세를 안내도 되니 나만 혼자 쫓겨 올라가는 것만 아니라면 나쁠 게 없다. 고객들도 어차피 자주 다니던 곳이 아니니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간다고 해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무엇보다 한 달 죽도록 벌어도 월세 내기 빠듯하다는 자영업자들 숨통을 이렇게라도 좀 틔워주는 게 어떤가.